구직과 취업이 안돼서 명절이 싫다!

직장인들에게 2009년 가장 길었던(?) 연휴인 이번 구정 설날에 다들 편하게 쉬셨는지요.
한동안 못 보았던 친척들과 또 가족, 식구들과 떡국은 잘 드셨어요?
어제 길고 길었던(?) 연휴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조금씩 잊혀져가던 학교 후배가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었습니다.

"선배님 잘 지내세요?"
"아! 진짜 오랜만이다. 요즘 모하고 지내? 명절은 잘 보냈어? 너 집이 목포였지? 잘 갔다왔어?"
"아니요. 이번 설에 집에 안갔어요."
"아니 왜? 명절이 너무 짧아서 안갔어?"
"아니요... 취업도 못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얼굴을 뵈요. 그냥 도서관에서 이력서랑 자소서 수정하고 책 봤어요"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 친구는 현재 취업 재수생입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토익학원과 아르바이트를 간간히 하면서 구직활동을 제가 알기론 꽤나 열심히 하는 친구였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멀리도 많이 다니고 희망하는 직무를 찾기 위해 희망 직무를 현업에서 담당하는 선배를 쫓아다니며 실제적인 이야기를 듣고 메모하고 녹음하고, 면접과 서류전형에 대한 스킬을 배우기 위해 취업컨설팅과 캠프 등에도 많이 다니는 친구입니다. 일년에 딱 2번! 구정과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던 친구였는데 이번에 그것마저 백수라는 이유로 가지 못했나봅니다.
취업하는게 많이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아주 때마침 이와 똑같은 상황의 신문기사도 읽게 되었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 오후 서울 신촌의 연세대 중앙도서관 1층. 400여 개의 열람석 중 300여 명이 차 있다. 저마다 상식이나 영어·민법 등 취업 관련 책을 펼쳐 놓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중앙일보 장정훈·김기환 기자 원문보기 )


어제 한동안 그 후배 생각때문에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어떤 친구 생각이 갑자기 나기에 그 친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겨두었던 취업수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12월 8일을 끝으로 더럽고, 치졸하고, 짜증나는 취업 전선에 드뎌 막을 내렸다.

그 동안... 낙방한 날 밤, 잠자기 전 남 몰래 눈물도 훔쳐보고, '이게 내가 가야하는 길인가?'라고 하루에도 수십 번 내 자신에게 물어보며 도서관에서 끝없는 씨름을 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느린 소걸음에도 매일 부지런히 걷다보면 날렵한 쥐가 잡히리라...

그 마음으로 계속 개기는 수밖에 없었다...

최종 합격을 하기 위해 85번의 쓰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매주 금요일이 싫었다. 금요일 발표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취뽀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엄청난 스펙 보유자들이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이다. 난 다른 사람보다 두 배 세배 노력해야했다.

방법을 열심히 찾아봤다.

첫 번째 태도변화

기죽지 않고 문화생활 및 신문이나 죽도록 봤다.

자고 싶은 잠 푹~잤고, 영화다운 받아서 다 보고, 신문도 보고, 거실 나가서 TV도 보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음악도 듣고, 연애도 했다.

핵우산이 뭔지, PSI가 뭔지, 이명박씨의 경부운하, 홍준표의 부동산 정책 등

강의가 없어진 내 삶에 머리를 계속 쉴틈없이 굴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취직은 하고 싶다, 하지만 능력은 안 된다.

무조건 지원했다 - 능력 없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소스였다. 취업 관련 사이트 즐겨 찾기 30개 이상(카페 포함) 이력서 관련 폴더 바탕화면에 하나 만들었고[이력서 관련 서류 및 사진, 자격증, 성적표, 한글 이력서 자소서, 엑셀 자소서, 워드 이력서 등등 이력서 관련 파일만 최소 60개가 넘었다.]

대략적으로 10개월 동안, 90개 정도의 이력서를 제출한 거 같다.

but, 제출한 이력서 메모 필수 및 수신 확인 필수, 지원 부분 확인 필수...(나는 다이어리를 사용)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처음 30개 정도의 이력서 및 자소서를 보면, 중학교 글짓기 수준이다. 하지만 계속 제출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알수 없는 자기만의 TIP이라는 것이 생겼다.

세 번째, 마지막 팁,

10분이 걸리든, 2시간이 걸리든, 왕복 6시간이 걸리든 (대신 KTX 및 비싼 거리는 가지 마라, 우리는 백수) 직원이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운 좋아서 천명 이상이든 할 일 없으면 면접은 무조건 간다. (그래야 면접비라도 번다) [취업 박람회도 정장 및 이력서와 자소서 지참하여 무조건 따라 다닌다.] 시청주관도 있고....경기도 주관 박람회도 있고.. 등등

제발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취업 박람회 가지 말자.

면접 많이 보다보면 또 다른 TIP이 생긴다. 처음 면접 때는 유치원생이 한글 배우듯이 말하지만 면접을 많이 보면 남들이 알수 없는 TIP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 친구는 결국 본인이 희망하는 마케팅부서에 들어가서 올해로 벌써 3년차가 되었네요.

너무 기죽어 사는게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금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신감을 가지고 준비하는 구직자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영웅신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함은 아닙니다.
본인도 충분히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패기와 열정을 꼭 가슴속 깊이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I can do it!



Posted by 편지봉투
,

숭고한 종소리 - 워낭소리 old partner




1. old partner - 노동으로 엮인 관계
중노동의 세월. 일한만큼만 먹을 수 있던 과거부터 그들은 함께였다. 할아버지가 한발 내딛으면 소도 한발 내딛었다. 할아버지가 밥 한 그릇이면 소도 죽 한 사발이었다.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인간의 100년 보다 긴 소의 40년 인생과 중노동으로 점철된 노인의 고된 삶을 나는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영화관에 앉아 감상했다. 수십년 중 단 일초도 게으를 수 없었던, 그들이 온 몸으로 겪어낸 노동에 깊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보면 볼수록 할아버지와 소가 당하는 육체의 고통이 절절히 느껴졌다. 자꾸 눈물이 나온다. 아파서도 아니고 불쌍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저들의 반의 반만큼도 안 되는 일을 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창피했다.




2. 한 컷마다 살아 있는 장인정신
다큐라고 해서 사실, 카메라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TV를 장악한 흔들거리는 6m 카메라가 심히 못마땅한 처지라 내 돈을 몇 천원씩 주고 보는 큰 스크린에서까지 그런 걸 보고 싶진 않았다.
3년을 찍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숫자 3이지, 하루로 셈하면 그 단위가 만만찮다. 깊은 산골의 농촌 풍경이 살아 있었고, 계절의 변화가 컷 마다 느껴졌다. 할아버지와 소의 투샷, 할아버지 얼굴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은 물론  청개구리, 잠자리 인서트까지 한컷 한컷마다 장인정신이 살아있었다. 3년간 몇 개의 테잎이 촬영되었는지, 오디오가 잘못되어 아까운 장면을 버린 적은 없는지, 3년간 감독은 어떻게 돈 벌어 생활을 해나갔을지 소소한 촬영과정이 전부 궁금했다. 편집하면서 아까운 장면을 버려야 할 때 얼마나 속이 쓰린지 적게나마 경험이 있기에 감독이 편집하면서 들였을 공이 가히 짐작된다.
잘 만든 다큐는 참 재미있었다. 다큐가 '재미있다.'




3. 워낭은 죽지 않았다 - 다큐의 음악은 '워낭소리'
소가 조용히 눈 감던 날, 숨이 떨어지기 직전에 할아버지는 본인 손으로 코푸레와 워낭을 떼 냈다. 할아버지는 머리가 아파서 누워 있다가도 소의 워낭소리만 들리면 움찔하곤 했는데… 소의 목 밑에서 풀려난 종-워낭은 이제 할아버지의 낡은 집 처마끝에 매달렸단다. 소가 움직이는 듯 바람이 불 때면 워낭소리는 땡, 땡, 할아버지 곁을 지킨다.

다큐를 완성하는 음악은 다름아닌 워낭소리였다. 매 걸음이 인생의 마지막 걸음처럼 무거워 보였던 소의 움직임은 워낭소리가 있었기에 생명력이 느껴졌다. 소가 지치면 워낭소리도 지쳤고, 소가 꾸준히 걸으면 워낭소리도 힘이 났다. 소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워낭, 워낭소리. 워낭소리는 소의 생명이자, 기운이었고, 할아버지와 소가 나누는 교감 그 자체였고, 다큐를 완성하는 음악이었다. 아름다운 화면과 함께 소리로 기억될 다큐이다.

4. 내래이션은 할머니의 잔소리
다큐를 이끄는 해설은 할머니의 잔소리였다. 할머니는 농약치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저 여자는 농약 치는 남편 만나서 편히 살고, 나는 소한테 해 갈까봐 농약 절대 안 치는 남편 만나서 고생한다."고 부지런히 '설명'한다. "라디오도 고물, 할아버지도 고물" 이라고 껄껄 웃기도 하고, "열 여섯에 시집와 할아버지 만나서 이꺼정 일만 하고 고생한다."고 신세한탄도 늘어 놓는다. "팔아! 소 팔아!"하고 할아버지를 닦달하다가도 소가 안쓰럽고, 아픈 할아버지가 걱정이다. 어떤 내레이션이 할머니 잔소리만 했을까. 다큐가 웰메이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5. 잘 가라, 소야. 참말로 고맙다.
다큐의 시작은 소의 죽음을 알린다. 소를 위해 불공을 드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이 애쓰지 않아도 소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소가 그 많은 땔감을 해 놓은 것도 그래서가 아니겠는가. 소의 죽음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 이유는 소의 그런 마음을 너무 생생히 느꼈기 때문이다. 소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다리였고, 함께 일하는 동료였고, 같이 사는 가족이었고, 작은 움직임에도 마음이 쓰이는 친구였다. 할아버지에게 소 또한 그런 존재였으리라. 할아버지 할머니 소가 전하는 관계의 울림이 눈물이 되어 콸콸 쏟아졌다. 나의 인생에도 저런 파트너가 있어주길…



6.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
도시와 시골의 대비만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다른 나라 이야기 같았다. 내가 앉아 있는 영화관과 봉화 산골마을의 거리, 딱 그 거리만큼의 괴리감. 그러나 내가 '동화같은' 이라든가 '정겨운 시골 풍경' 따위의 단어를 쓸 수 없는 이유는 노인의 얼굴에 깊게 파인 세월과 노동의 흔적 때문이다. 그런 세월을 겪어낸 이에게 몽롱하고 불분명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난 시골생활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정겨웠던 적도 없다. 그들의 현실에 열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나도 내 현실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몸 건강하시길.

※ 모든 사진의 출처는 <워낭소리> 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warnangsori

Posted by 편지봉투
,


구직, 취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구직자 여러분께서는 제목에서 물어본 내용처럼 구직, 취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HR부문에서 일한지도 올해들어 횟수로 5년째입니다. 채용과 관련된 교육을 하다보니 신기하게도 (해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구직시 학교 후배들 혹은 주변 학생들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에 대한 생각은 거의 일치하는듯 싶습니다. 물론 신입사원의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처음 입사 지원할 때 지금 구직자분들의 생각과 거의 동일했던 것 같습니다. 일순위가 연봉, 회사규모, 회사이름, 복리후생 등등. 이런 순으로 회사를 써치하기 마련이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 현재 회사를 써치하시는 분들의 심정도 저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았으니깐요. 그러나 이제는 그 1순위라 생각하는 연봉이라는 수치조차도 팍팍 낮추는 추세입니다. 이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하게도 연봉보다는 취업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이 기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연봉’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 침체로 희망연봉마저 낮춰 취업하려는 구직자들이 늘었다. (CNB뉴스 김대희 기자 : (원문보기)


언론과 미디어 등을 통해서 신입사원의 연봉수준을 나타내는 수치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항상 '말도안돼!' 하고 외치고 있답니다. 신입사원 평균! 평균! 평균! - 도대체 평균이라니... 그 평균연봉이 2800만원선?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20대기업의 평균연봉 수치를 대한민국 전체 신입사원의 연봉인 것처럼 광고를 해 주고 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구직자의 눈들은 높아만 집니다. " 아! 내가 저 정도는 받아야 정상이구나! " 하고요. 하지만 실정은 이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중소기업의 그것도 10~1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의 신입사원 평균연봉은 대략 1800~2400 선 정도 입니다. 언론 등에서 발표한 연봉과 크게는 약 1000만원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항상 매번 신문과 인터넷기사와 그리고 취업, 구직관련 글들을 통해 " 올해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0000 만원으로 측정될 예정입니다 " 라는 말도 안되는 글귀를 보며 항상 답답하고 또 이런 글들이 나올 때 마다 주변의 이제 막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배나 학교에서 저의 도움을 조금이나마 받고 입사한 친구들은 연락이 옵니다.
" 형! 나 아무래도 여기 연봉이 너무 적어서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
" 선배님. 이 회사는 신입사원을 너무 안챙겨주는거 아닌가요? "

저희 인사담당자들 사이에는 '구직시 회사의 선정방식이 연봉을 보고 했을 때는 3개월을 못가고 회사명만을 보고 했을 때는 6개월을 못간다' 는 속설이 있습니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직무에 대한 일을 했을 때는 실제로 이보다 훨씬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답니다.

구직과 취업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고합니다. 원하는 일과 높은 연봉을 받는다면 이는 더할나이없이 최고 조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허나 신입사원에게 이 두가지의 선택 중 한가지을 우선적으로 택하라고 한다면 그 1순위를 연봉이 아니라 희망직무로 두고 선택해 봄은 어떨까요?

"전 제가 정확하게 하고싶은게 없어요! 무엇을 해야할까요? " 하고 고민하는 구직자 분들은 회사에 대한 써치와 연봉에 대한 조사보다 우선으로 자신의 희망 직무찾는 일부터 해야 차후 1, 3, 5, 7년차때 오는 자신의 슬럼프를 슬기롭고 똑똑하게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직무! 희망직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구직자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편지봉투
,

"외로워서, 지독히 외로워서 글을 씁니다"



 
3년 전에 드라마 작가님 한 분을 알았는데, 누군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글을 쓰시나요? 그에 대한 답이 "외로워서" 였지요. 듣는 순간 그 말 그대로 제 가슴에 와서 콱 박혔습니다. 외.로.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 요동치는 마음을 들킬까봐 창 밖에 있는 우중충한 빌딩만 바라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얘기를 오늘 또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막 등단한 소설가가 그러셨답니다. "외로워서, 지독히 외로워서 글을 씁니다" 아. 3년 전 제 가슴을 때린 외로움을 다시 대면하다니. 제가 직접 들은 말은 아니지만, 가슴 절절이 느낌이 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습니다. 외로울 때, 나는 무얼 했는가?

'나는 외롭지 않아. 외로웠던 적이 없어.'하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외로워 본 적이 없다고 우긴다면 저의 '외로움'이 당신에겐 다른 이름으로 불린게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이 가지는 본성이라고, 감히 짐작합니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외로움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이에 비례한 직접 경험으로 외로움을 배워나갔는 지도 모릅니다. 크게 웃는 와중에도 외롭구나, 맛있는 걸 먹어도 외롭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있는 순간에도 외로울 수 있구나... 소통의 부재나 사회성의 부족을 들먹일 일이 아닙니다. 시작도 끝도 모르는 외로움은 항시 제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 업무에 집중할 때, 화장실 볼일에 힘 줄 때 등등 - 외로움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가 또 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잔잔한 바다에 떠다니는 스티로폼 같이 수면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외로움, 저의 외로움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외로운 때 저는 글 안 쓰고 무엇을 했을까요? 저도 글을 썼더라면 저 분들처럼은 못 되더라도 그 언저리쯤은 될 수 있었을텐데…

키보드에 손을 올려 놓은 채로 가만 생각해보니… 저는 외로울 때 가만히 있었습니다. 외로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임을 일찍 깨우쳤나 봅니다. 이렇게나 가만히 있던 걸 보면.

외로워서 할 수 밖에 없는 일. 듣기엔 멋있고 운명같은 묵직함도 느껴지지만, 본인에겐 분명 고통이 따랐을 겁니다. 외로움은 '참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외로움을 친구로 만들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고, 인내를 하더라도 살가운 친구가 되긴 힘든, 아주 요상한 놈입니다. 정체불명이죠.

외로울 때 영어 단어라도 외워볼까요? 영화를 한 편씩 볼 수도 있겠군요. 책도 있겠고요, 밥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일기를 쓴다던가, 애인을 못 살게 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외로울 땐 이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외로움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원동력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원동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이 깊고 무거운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면, 저의 그것은 얕고 가벼웠던 겁니다. 아하, 제가 훌륭한 무엇이 되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네요. 과연? 하하.  외로움에게 잘 해줘야겠습니다. 그래야 같이 으쌰으쌰해서 뭔가 해보지요.

지독한 외로움을 원동력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는 분을 다시 만나서 다소 감상에 젖었습니다. 존경하면서도 가슴 아릿한 것이 밀려와서 몇 글자 적어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외로움을 믿고 따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부터 움직여 볼 심산입니다. 외로움과 함께.


주먹입니다

외로움을 손에 들고 움직이는 주먹

Posted by 편지봉투
,

거장들의 발자취 -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



서양미술거장전

서양미술거장전 초대권




보자기(남자친구)가 구해 온 <서양미술거장전: 렘브란트를 만나다> 티켓입니다. 일년쯤 전인가, 시립미술관에서 고흐전 할 때 제가 보고싶다고 하니까 자기가 이벤트 응모했으니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다리다가 결국 전시회를 놓쳐버린 전과가 있기에 이번에는 티켓을 냉큼 구해오더군요. 저야 고맙죠.

서양미술거장전

예술의전당 전면에 걸렸습니다

서양미술거장전

티켓박스도 거장전의 그림입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으로 북적북적. 엄마 아빠 손 잡고 나온 아이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서양미술거장전

전시실 입구 앞 로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서양미술거장전은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 스페인 등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 50인의 그림을 전시했습니다. 루벤스, 반다이크, 브뤼헐, 푸생, 부셰 그리고 렘브란트까지 익숙한 이름의 화가들이 눈에 띄는데요, 저 같은 문외한이 들어본 정도라면 무척 유명하다는 뜻 아닐까요? 전시회 이름 그대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부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당연하겠죠?^^) 그 분위기를 보여드릴 순 없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래 기다린 점을 제외하곤 괜찮았습니다. 전시장은 파스텔톤 벽의 아늑한 분위기로 차분한 조명과 함께 그림에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으로 향한 조명이 눈에 거슬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제가 키가 작아서 그런건지... 크기가 큰 그림을 정면에서 볼라치면 조명이 그림의 윗부분을 환하게 비쳐서 눈이 부시더라구요. 그래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봐야 했어요. 음... 정말 제 키 때문인지... 조명이 그림을 보는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단 사실을 처음 느꼈습니다.

전시실은 9개의 방으로 각 방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테마를 설명한 문구가 굉장히 멋있는데, 기억나는 게 없네요. 방학숙제 하는 어린이와 십대가 열심히 적고 있던데, 저도 따라 적을 걸 그랬나봅니다.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이 나와 있으니, 읽어보세요.

『서양미술거장展 : 렘브란트를 만나다』 바로가기

일요일은 그림 설명이 없어서, sbs 박찬민 아나운서가 해설하는 오디오를 들으며 전시실을 돌았습니다. 그림 설명이 어렵지 않게 귀에 쏙쏙 잘 들어옵니다. 해설 덕분에 그림 하나하나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것 같습니다. 아무 설명없이 봤으면 그냥 슥 지나쳤을 것을, 해설 덕분에 전시와 그림의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되어, 시험에 100점 맞은 것 만큼 뿌듯한 공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행사장에서 판매되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은 사실을 감안해 주세요.

서양미술거장전

부셰,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에로틱이 바로 느껴지지 않나요? 남성의 탄탄한 근육도 눈에 확 띄지만, 여성의 당당한 기세가 느껴집니다. 벌을 받느라 옴팔레의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 옴팔레가 그 남성다움에 반해 먼저 유혹했다는 오디오 설명에 키득거렸습니다. 이런 명작 앞에서 키득거릴수 있다니, 웃겨서 혼났어요.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과일 파는 소녀>
과일 파는 소녀의 얼굴에 머금은 미소에서 교태가 느껴지나요? 오디오 해설에 따르면 "교태가 느껴지는 미소는 소녀가 몸 파는 여인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동감할 수 없습니다. 저 미소가 교태라니. 물론 "당시에는..."의 조건이 붙었기에 반대할 여지는 없지만, 소녀가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무엇일까,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아무튼 참 예쁜 소녀입니다.


☞ 조반니 파울로 파니니, <로마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의 내부>
원근법은 대자연을 그릴 때나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실내에서도 여지없이 그 힘을 발휘합니다. 저 정확한 원근법과 디테일의 정확한 묘사는 마치 과학자가 그린 그림 같습니다. (수학자였다가 화가로 전업한 화가가 있었는데, 그 화가의 작품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납니다.) 원근법이 무엇인지, 교과서 속 이론을 거장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온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저를 밀어내지 않았다면 다른 그림 앞으로 갈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 小 피터르 브뤼헐, <겨울: 스케이트 타기>
마치 '숨은 그림 찾기'하는 것 같습니다. 스케이트 타는 사람, 넘어질 듯 휘청대는 사람, 얼음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 친구가 썰매 밀어주는 커플도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재치있게 담아낸 이 작품은 해설 그대로 '동화' 같습니다. 목판에 그렸단 점도 특이합니다. 브뤼헐리 그린 사계 중 겨울입니다. 브뤼헐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회화는 예술의 의미도 있지만 '기록'의 의미도 매우 컸다고 생각됩니다.

서양미술거장전

작가 작품명 모두 모르겠어요 T.


정물화가 테마인 방도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제일 그리기 싫은 게 정물화였는데, 생각이 아주 달라졌어요. 정물의 배치, 구도, 표현 등등 그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정물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운데 가재의 크기가 과장된 것, 눈치 채셨나요?

☞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 <헝클어진 머리를 한 렘브란트>
전시회 주인공이 렘브란트인데, 여지껏 한 마디 언급이 없었네요. 특별전 <렘브란트를 만나다>는 에칭 특별전으로 꾸며졌습니다. 동판에 조각칼 등을 사용해서 그린 다음에 부식시킨 후 찍어내는 기법인데요, 작품의 크기가 매우 작아요. 저 자화상은 제 손바닥만한 크기입니다. 아주 어릴 때 쓰던 스케치북 크기 정도인 작품도 있었지만, 대부분 제 손바닥 크기 수준이었어요. 아무래도 작품을 만드는데 공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선 하나하나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렘브란트가 작업하는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부시시한 머리의 렘브란트가 인상적이죠? 신화 속 여신도 똥배 불룩하게 그리더니, 자기 모습도 있는 그대로 그리나봅니다. 저는 해설의 '사실적'이란 설명보단 렘브란트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똥배를 가진 여신(요정?)이라니...ㅋㅋ



☞ <깃털이 달린 벨벳모자를 쓴 자화상>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렘브란트>
화가로 잘 나갈 때 돈을 펑펑 쓰던 렘브란트는 말년에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인도 먼저 죽고, 혼자 쓸쓸한 생활을 할 때 그린 자화상이 창가에서 소박하게 그림 그리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모자와 옷을 입은 자화상이 돈 많이 벌 때 그린 그림이구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서양미술거장전은 오랜만에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렘브란트, 루벤스, 부솅 등등 거장을 만나는 의미도 있었고, 회화의 역사를 알고 상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되었고... 제일 좋은 점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겁니다. 누구의 그림인가, 얼마나 인정받는 작품인가, 역사적인 의미는 어느 정도인가도 중요하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다는 경험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편지봉투
,

"여자 나이 서른이면 절망이야"


2009년을 며칠 앞두고 선배가 메신저로 말을 걸더니 새해에 몇 살이냐고 묻습니다. 저는 별 생각없이 '30, 서른, 써티, 이립'하고 장난처럼 답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선배의 대답. "여자 나이 서른이면 절망이야." 하, 분명히 농담으로 던진 말일텐데, 나도 농담으로 받아? 아니지, 여성비하에 나이차별을 대놓고 했으니 농담이라도 봐 줄 순 없지, 정색을 하고 화 내? - 약 10초간 큰 혼란 끝에 한 말은 "아, 그런가요?"입니다.

2009년 1월 1일을 시작하는 0시에 종이 땡 치고, 공식적인 서른이 되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절망스럽나?'

힘내라 서른

서른의 초상?!



결혼을 종용하는 부모님과 반토막 난 펀드, 포기한 꿈의 잔여물가 그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력, 늘어난 기미와 주근깨, 주름, 늘어난 뱃살 특히 아랫배, 무한도전 멤버들보다 더 저질 체력, 나도 모른새 고착되어버린 아집… 이 정도면 '절망'이란 단어에 버럭할 일은 아니군요.


힘내라 서른

보자기와 주먹

결혼 얘기 꺼내는 부모님을 입 막음 할 수 있는 재주, 언제나 내 말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따듯한 애인, 빌리든 꾸든 약간의 현금 동원력, 갖은 직업이 가져다 준 다양한 경험, 어느새 구축된 말발, 어느 누구하고도 대화할 수 있고 하고 싶다는 열린 마음, 20대 초반이라고 사기칠 수 있는 얼굴, 서로 신뢰하는 친구들, 아직은 꿈 꿀 수 있을거라는 희망, 자리 잡아가는 나만의 취향과 안목,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 하하, 너무 억지인가요? 내가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들.

살펴본 결과, '절망'은 아니라고 결론 지어 봅니다. 스물 아홉이었던 어제와 서른이 된 오늘이 비슷한 일상이듯 나에게 있는 것들도 스물 다섯 혹은 그 아래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20대를 지날 땐 내가 갖고 있는 지조차 몰랐다고 할까요, 스스로 의식하고 그 근원을 캐내려 애써 생각하는 태도가 서른에 달라진 점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10단위의 나이가 의미있는 이유는 스스로 돌아보고 결산하는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선배의 말에서 '절망'에 방점을 찍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자'에 대한 생각은 좀 더 해봐야겠습니다. 스스로 여성임을 깨달은 지 얼마 안되거든요. 20년이 넘도록 자각 못한 사실을 알고 나선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그만큼 '여성'에 대한 고민은 독자적으로 풀고 싶습니다. 음...고민은 '절망'에서 연유했으나 결론은 '서른'에서 났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서른을 살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큰 기대도 섣부른 실망도 없습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몫입니다. 마흔이 되는 순간, "서른은 살아볼만 했습니다. 마흔도 기대되네요."하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면 좋겠네요. 여러분도 여러분 나이 만큼 행복하시길.
 
Posted by 편지봉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