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 중에 얻은 교훈 "모국어에 자만하지 말라"


영어공부를 시작(2009/10/28 - [주먹의즐거움] - 서른에 영어공부 이렇게 합니다 - 영어문법 쓰기 읽기 말하기)
하고부터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스터디의 멤버는 물론, 언어교환 사이트 Lang-8에서 서로의 언어로 일기를 고쳐주는 친구들까지. 영어스터디는 일주일에 한번은 꼭 만나야해서 관계가 익어갈 수 있다지만, Lang-8의 친구들은 의외였습니다. 

Lang-8에서는 제가 영어로 일기를 써서 올리면, 영어를 모국어로 설정한 사람이 틀린 부분을 고쳐줍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쓴 일기는 제가 고쳐주죠. 서로의 일기를 공유하는 것은 결국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되고, 감사 멘트를 남기고, 개인적인 메시지도 주고 받으면서 온라인 친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Lang-8은 접속 속도가 매우 느린 사이트라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활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속도가 빠른 사무실에서도 글 하나 올리기가 힘들었는데 집에서는 아예 엄두도 못 냈죠. 몇 주 전에 집에 XPEED100 주택광랜을 설치하고서야 제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9/11/03 - [주먹의일상] - XPEED100으로 바꾸고 홈쇼핑이 가능해졌다) 인터넷 속도가 빠르니 홈쇼핑말고도 도움 받을 것이 많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왜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았습니다.

Lang-8 홈페이지



Lang-8을 이용하면서 알게 된 점은 영어일기를 쓰는 것보다 한국어(모국어) 일기를 고쳐주는 것이 때론 더 어렵단 사실입니다.

한국어 일기 첨삭의 예



외국인이 쓴 한국어 일기에서 '잔디를 베었어요'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잔디를 깎았어요'로 고치려다 문득 '베다'도 틀린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생전 보지도 않는 국어사전을 뒤졌습니다.

베다
날이 있는 연장 따위로 무엇을 끊거나 자르거나 가르다.
- 낫으로 벼를 베다
- 풀을 베다

깎다
풀이나 털 따위를 잘라내다.
- 머리를 깎다
- 산소의 풀을 깎다
- 그 집 식구들은 정원 잔디를 기계로 밀어서 깎았다.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잔디를 베다'가 틀린표현이 아님을 확신하고, '잔디를 베다'라는 표현이 맞지만 '잔디를 깎다'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설명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 때부터 한국어 일기를 첨삭할 때, 헷갈리는 표현은 국어사전을 찾고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을 합니다. 모국어라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Lang-8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 메일을 다시 읽었는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중요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자기 언어 능력을 과신하면 안 됩니다."
"'잘못된' 표현을 봤을 때는 혹시 자기 지식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첨삭을 받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함"


제 속을 정확히 꿰뚫은 완벽한 조언이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어 커뮤니티를 운영하시는 분이 보내주셨는데, 일본어 한국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듯 했습니다. 언어에 대한 감각도 출중하지만, 그 내용이 충실해서 감탄했습니다.

모국어쯤 아무것도 아니지,하는 마음이 싹 가셨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일수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영어공부하다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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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 언니의 결혼, 가장 많은 질문 "초혼이야?"


평소에 결혼 생각이 없던 외사촌 언니가 작년에 만난 분하고 사귀는 것을 보고 가족 전체가 긴장(?)했었죠. 친척들이 모이면 은근히 오가는 인사가 "00는 연애 잘 하고 있나?"였습니다. 언니에게 부담이 갈 것을 염려하여 면전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언니의 결혼은 큰 관심사였습니다.

지난달, 언니가 드디어 결혼을 했습니다. 서른 일곱의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언니 스스로야 서른 다섯을 넘기면서부터 슬슬 결혼하겠단 생각이 들었다니 문제가 안 되겠지만, 어른들은 훨씬 전부터 매우 신경을 쓰셨죠. 그래서 언니가 결혼하는 날 누구 하나 입이 귀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언니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을 때, 제가 너무 들뜬 나머지 언니의 나이를 큰 소리로 공개해버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크게 놀라면서, 심하게 동안인 언니 얼굴을 노골적으로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언니대로 창피하고, 저는 언니의 눈총에 민망하고... 당황해서 슬쩍 자리를 뜨려는데 사람들이 신랑의 나이를 묻더군요. 신랑도 역시 서른 일곱의 동갑내기라 대답하니 어떤 분이 "여자가 땡 잡았네."하고 농담을 던집니다. 하하하하

몇몇 분이 "저 사람들 초혼인가?"라고 소곤거리는데, 그때서야 아뿔사 했습니다. 마흔 가까운 나이만 생각하면 그런 오해를 충분히 살 수 있었죠. 형부가 그것을 들으시곤 허허 웃으시며 "초혼이라고 발표할까?"하고 농담으로 받으시더라구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무안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른 일곱의 언니가 결혼했다는 말을 하기 무섭게 따라오는 질문은 "초혼이야?. 언니가 초혼이라 대답하면 "상대도?". 네, 저희 언니와 형부는 초혼입니다. 두 분 모두 순수하고 정직해서 연애는 젬병에 가까웠지만, 결혼할 때는 작은 다툼 한번 없었습니다. 경제력도 어느 정도 갖추어 둔 터라, 집이며 가구며 모두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했습니다. 물론 규모는 소박했습니다. 

신혼여행을 다녀 온 언니 내외가 인사를 왔길래 인터넷으로 선물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주택광랜 XPEED100을 설치하고 속도가 잘 나와서 쇼핑은 죄다 인터넷으로 하는데, 마침 잘 됐죠. 다리미를 고르던 언니는 커튼으로 빠지더니 형부 쟈켓으로 옮겨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언니도 결혼 전에 주택에서 살았는데 속도가 느려서 홈쇼핑은 힘들었다고, XPEED100으로 아주 신이 났습니다. 새댁 한복을 입고 인터넷하는 모습이 웃겨서 찍으려는데 언니의 거부가 완강하여 실패했습니다. 대신 속도 인증샷입니다. 



집들이까지 마친 언니는 본격적으로 신혼의 일상을 즐길 일만 남았습니다. 그네들의 행복에 나이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서른 일곱 동갑내기 부부의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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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나의독서론




나에게 독서는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입니다.

놀이터에 들어가면 그 어떤 제약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습니다.
어찌나 신이 나는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싫습니다.
놀이에 순서가 있나요? 원하는대로 마음껏 놀면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놀이기구가 하나씩 바뀌고 거기에 적응하는 동안
키가 자라고 마음이 자랐습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놀이터가 더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이제껏 혼자 놀다가 친구를 사귀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도 자신만의 놀이터를 가지고 있고, 때론 서로의 놀이터에서 함께 놀리도 합니다.

무궁무진한 즐거움이 있는, 한번 빠지면 나오기 싫은 독서는 바로 제 놀이터입니다.


펨께님의 바톤을 이어받은 릴레이, 나의 독서론입니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 정말 놀랍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네요. 독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어찌나 멋진 말들을 써 주셨는지, 저는 따라갈 수 없더군요. 상당한 고민 끝에 놀이터,라고 의미 지어봤습니다.  

민시오 님의 블로그에 가시면 릴레이에 참여해주신 분들의 명단을 볼 수 있습니다. 

▶ 말씀드린대로, 펨께님께서 저에게 바톤을 넘겨 주셨습니다. 

▶ 저는 젊은 두 청년에게 이 바톤을 넘겨보겠습니다. 

1. 출퇴근 시간에 책을 끼고 다니고, 어떻게 하면 잘 하는 독서인지 항상 고민했던 스윗포켓
2. 글을 한번 썼다 하면 베스트나 메인에 꼭 오르는 필력을 가진 미자라지 님. 
 
릴레이 유효기간이 하루 남았는데, 멋진 두 분이 꼭 대미를 장식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발~~~

[릴레이] 나의 독서론 규칙

1. 독서란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 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를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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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도우미 불러주는 '친절한' 선배의 여자친구


지난 며칠 새에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민이 되는 부분이어서 올려봅니다.

1. A군의 이야기

절친한 고등학교 선배한테 연락이 왔다.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준단다. 오케이. 연락이 닿는 친구들과 함께 선배와 선배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직장에서 만난 두 분은 나이차이가 좀 났지만, 사귄지 오래되어 그런지 서로에게 익숙해 보였다. 

선배가 1차를 건하게 샀고, 2차로 옮기기로 했다. 2차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여 맥주와 노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결정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예비 형수는 "제가 없어야 재미있게 놀죠. 가 볼게요."하고 가버렸다. 예비 형수 보자고 마련한 자리인데 자기가 없어야 재밌다니... 이해가 안 갔지만, 선배가 가만히 있는데 내가 계속 잡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보내드렸다.

맥주가 들어오고 노래를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여성 3명이 들어왔다. 이게 뭐야! 알고 보니 예비 형수가 나가면서 부른 노래방 도우미들이었다. 이건 아닌데... 여성이 있다고 재미있지 않다. 오히려 불편하다.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나가서 술집 사장님을 찾았다. "정말 죄송한데요, 뭔가 착각이 있었나봐요. 저 분들 좀 빼주실 수 있으세요?" 안 된다면 어쩌지? 사장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가씨 부른다고 나한테 돈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상관없어요." 사장은 당장 여성들을 불러냈고, 도우미들는 나오기가 무섭게 다른 방으로 나뉘어 들어갔다. 


2. B군의 이야기

친구를 만나서 술 한잔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동네 후배 녀석이 지나간다. 소문에 유학까지 갔다와서도 취업을 못 해 빌빌거린다는 녀석이다. 얼른 불렀다. 서로 안부를 묻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얘기를 듣다보니 후배는 취업에 대해 상당히 주눅들어 있었다.

이 녀석을 어떻게 위로하지? 후배는 나와 내 친구가 대기업 다니는 것이 부럽다며 청승을 떤다. 그래, 돈 버는 형들이 좋은데 데려갈게! 큰 소리치고 나왔다. 룸에 들어가서 양주를 시켰다. 금방 여자 세 명이 들어왔고, 우리 옆에 각각 앉았다.

한참 기분좋게 놀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여자친구다. 어쩌지? 모르는 척 하는 게 낫겠다. 계속 온다. 난리났다. 결국 받고 말았다. 여자친구가 화를 내면서 지금 어디냔다. 어설픈 변명을 하다가 들켜버렸다. 바로 튀어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며칠 간 빌어대자 여자친구의 화가 누그러졌다. 지금도 간혹 그때 얘기를 꺼내곤하지만, 헤어질 고비는 넘겼으니 다행이다.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drops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drops by Thomas Hawk 저작자 표시비영리 너거들! 지금 뭐하냐?!!



술집에서 여자를 부르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먼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던 이런 내용이 점점 가까운 사람들의 경험담이 되어버리니 당장 내 남자친구에게 일어날 일만 같아 심각하게 걱정되었습니다. 아예 없앨 수 없는 이런 일이 내 남자친구에게 생긴다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싫으니까 헤어져야 하는지, '쿨'하게 인정해야 하는지... 생각이 이렇게 흐르다보니 A가 만난 선배의 여자친구가 이해 가더군요.

선배의 여자친구도 이렇게 갈등상황을 겪다가 '아예 뿌리 뽑을 수도 없는 일이니 인정하자'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더 발전해서, 아예 자신이 여성을 불러주는 '친절'까지 갔을 수도....있지만 참 씁쓸하군요. 너무 과한 친절이 아닌지...

저는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서 여자를 옆에 두고 마신다는 게 극도로 싫습니다. 도대체 왜? 모르는 여성에게 무슨 짓을 하는거죠? 그렇지만 싫다고 아주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문제임을 나이가 들면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A는 워낙에 여성을 부르는 걸 싫어하더군요. 친구들도 다 알고 그런 자리가 마련되어도 A에게는 권하지 않는답니다. B는 좋아하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제 발로 걸어간 것을 보면 싫어하진 않나 봅니다. 술값이 100만원 정도 나왔다더라구요. 강남 아니라서 비싼 편은 아니라나...

지금 서른인데, 마흔에 쉰에는 어떨런지, 그에 맞춰서 저는 어떻게 변할런지, 걱정스럽고 화가 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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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아온 기적', 감사합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지난 토요일 오전, 시시각각 달라지는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당시 제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었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3년간 척추암과 싸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쓴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아..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누군가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한 삶과 그것이 괴로워 떠난 그 분. 상반된 두 삶이 똑같은 시간에 저를 덮쳤고, 죽음이라는 극단은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글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생략)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이런 추모글을 쓸 마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힘들 때 힘내시라고 한 마디 못한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검찰이 말하면 기자가 받아 적고...거기에 놀아난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할 때, '힘내세요.' 한 마디 적어드렸다면, 저는 그 분의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테고, 그 분도 '다시 만난 독자들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 여기지 않았을까...

일어나지 않을 일 생각해서 무엇하겠냐만서도, 앞으로가 막막해서 자꾸 뒤로만 갑니다. 이 세상, 어떻게 살아야 바른건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정치에 관심끄고 사는 게 내 맘 편한 삶인지, 그러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추모글 남기고 끝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지금은 온 마음 다해 그분을 추모할 시간인 듯 합니다. 어려움에 뛰어들기를 주저 않고, 자신의 뜻이 바른지 항상 고민했던 당신은 저에게 '살아온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살아갈 기적'을 기대했지만, 아쉽게 여기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제 눈에 안 보이는 어디에선가 또은 '역사'의 이름으로 '살아갈 기적'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조형준 님이 그린 것을 <사람 사는 세상>에서 퍼왔습니다.
그림 출처 : http://member.knowhow.or.kr/user_photo/view.php?start=0&pri_no=999764526&total=3838&mode=&search_target=&search_word=

* 전영희 교수님의 책을 읽고 쓰려던 것이 뜻하지 않은 사건때문에 글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교수님의 솔직하고 소박한 글에 감명받았습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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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시간 1분, 의사는 대화를 싫어한다?!


창피한 병명부터 공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름도 흔하고 유명한 '발톱무좀'! 얼마 전에 이 병(?)에 의료보험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해당 약을 먹기 위해선 간 수치부터 검사해야 된다고 해서 지난주에 피를 뽑아 놓고, 어제 그것을 확인하고 약도 타오기 위해서 병원을 갔습니다.

퇴근 후에 간 병원은 한산해서 가자마자 호출을 받았습니다. 들어가서 의사와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의사 : 어디, 발 좀 다시 봅시다.
: (운동화, 양말을 벗고 쑥쓰럽게 발을 들이민다)
의사 : (한번 본 후) 그래, 무좀에 가깝네.
: (후다닥 양말과 양말을 신고) 네.
의사 : 간수치 정상으로 나왔어요. 약 먹으면 됩니다. 일주일치 먹고 나머진 쉬었다가 한 달 후에 병원 와요.
: 일주일 이후엔 안 먹어도 된다구요?
의사 : 맞아요. 간수치 볼래요? (서류 보여주며) 정상이에요.

서류에는 영문과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어디에 정상이라고 적혀 있나요?
의사 : 여기 40이 기준인데 이 숫자보다 적게 나왔잖아요. 그럼 된 거에요. 정상이에요.
:  (책상에 있던 서류를 들고 보면서) 간수치는 숫자가 적을수록 좋은 건가요, 적당한 선이 있나요?
의사 : 본인이 정상입니다. 그 종이는 놓고 나가세요.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는)
: 아, 예. 감사합니다. (진료실 나가는)

 
이게 끝입니다. 지난번에도 너무 짧게 진료를 받아서 이번에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의사가 "...놓고 나.가.세.요."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니까 머쓱해져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와서는 언니(간호사, 간호조무사, 코디네이터?? 매번 들어도 까먹습니다)를 붙잡고 왜 바르는 약에 대해선 언급이 없는지, 약이랑 보약이랑 같이 먹어도 되는지, 효과는 언제부터 어떻게 나타나는지, 완치가 정말 되는지 등등 궁금했던 질문을 모두 했습니다. 친절히 대답해 주셨고요.

병원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의사들의 진료 시간은 무척 짧았습니다. 지난  겨울에 감기가 심해서 내과를 갔는데, 진료실에 들어가서 증상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의사가 청진기 갖다 대고, 입 벌려서 목구멍 들여다보고, 목에 칙칙이(?) 뿌리기를 순식간에 해치우더니 "요즘 유행하는 몸살감기"란 진단을 내리고 나가서 주사 맞으라더군요. 저의 말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의사의 볼 일은 이미 끝난 겁니다.

제가 갔던 병원에 대기자가 많았다면 말도 안 합니다. 내과에는 한 명 있었고, 피부과에 처음 갔을 땐 뒤에 아무도 없었으며, 오늘 갔을 땐 한 명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병원의 한가한 시간을 물어보고 예약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적이 없었습니다.

대기자가 별로 없었음에도 왜 그 내과 의사는 제 설명을 끝까지 듣지 않았을까요? 별 것 아닌 다 똑같은 설명은 들으나마나 한 걸까요? 왜 피부과 의사는 질문하고 있는 중에 나가라고 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놓고 나가세요." 보다는 "더 물어볼 것이 있나요?'라고 말해야 옳은 거 같은데, 제가 어려운 걸 바랐나요?

그 내과의사에게는 제가 수없이 똑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 중 하나였지만, 저는 감기 증상으로는 몇 년 만에 처음 병원을 찾을 만큼 지독하게 앓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피부과 의사에게는 매일 보아 온 발톱무좀 환자겠지만, 저는 3년간 발톱무좀에 시달리면서도 병원 찾을 생각을 못 할 만큼 무지함에 갇혀 있다가 의료보험으로 저렴하게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희망의 빛'에 가슴이 벅차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무조건 중병을 가진 환자를 대하듯 돌봐달라는 게 아닙니다. 수십 분씩 할애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 얘기를 끝까지 듣고, 저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의사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왜냐? 저는 문제를 가진 환자이고, 그들은 해결을 도와주는 의사니까요 - 이것이야말로 대화를 충분히 나눠야하는 제1의 이유가 아닐까요?

피부과에는 한 달 후에 다시 가야 합니다. 그때는 의사가 나가라고 해도 못 들은 척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의사가 고개를 돌리고 무심한 말투로 나가라고 한다면 또 머쓱해져서 그냥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고로 병원에서는 좀 뻔뻔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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