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의 발자취 -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
서양미술거장전 초대권
보자기(남자친구)가 구해 온 <서양미술거장전: 렘브란트를 만나다> 티켓입니다. 일년쯤 전인가, 시립미술관에서 고흐전 할 때 제가 보고싶다고 하니까 자기가 이벤트 응모했으니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다리다가 결국 전시회를 놓쳐버린 전과가 있기에 이번에는 티켓을 냉큼 구해오더군요. 저야 고맙죠.
예술의전당 전면에 걸렸습니다 |
티켓박스도 거장전의 그림입니다 |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으로 북적북적. 엄마 아빠 손 잡고 나온 아이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전시실 입구 앞 로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내부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당연하겠죠?^^) 그 분위기를 보여드릴 순 없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래 기다린 점을 제외하곤 괜찮았습니다. 전시장은 파스텔톤 벽의 아늑한 분위기로 차분한 조명과 함께 그림에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으로 향한 조명이 눈에 거슬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제가 키가 작아서 그런건지... 크기가 큰 그림을 정면에서 볼라치면 조명이 그림의 윗부분을 환하게 비쳐서 눈이 부시더라구요. 그래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봐야 했어요. 음... 정말 제 키 때문인지... 조명이 그림을 보는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단 사실을 처음 느꼈습니다.
전시실은 9개의 방으로 각 방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테마를 설명한 문구가 굉장히 멋있는데, 기억나는 게 없네요. 방학숙제 하는 어린이와 십대가 열심히 적고 있던데, 저도 따라 적을 걸 그랬나봅니다.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이 나와 있으니, 읽어보세요.
☞ 『서양미술거장展 : 렘브란트를 만나다』 바로가기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행사장에서 판매되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은 사실을 감안해 주세요.
부셰,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에로틱이 바로 느껴지지 않나요? 남성의 탄탄한 근육도 눈에 확 띄지만, 여성의 당당한 기세가 느껴집니다. 벌을 받느라 옴팔레의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 옴팔레가 그 남성다움에 반해 먼저 유혹했다는 오디오 설명에 키득거렸습니다. 이런 명작 앞에서 키득거릴수 있다니, 웃겨서 혼났어요.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과일 파는 소녀>
과일 파는 소녀의 얼굴에 머금은 미소에서 교태가 느껴지나요? 오디오 해설에 따르면 "교태가 느껴지는 미소는 소녀가 몸 파는 여인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동감할 수 없습니다. 저 미소가 교태라니. 물론 "당시에는..."의 조건이 붙었기에 반대할 여지는 없지만, 소녀가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무엇일까,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아무튼 참 예쁜 소녀입니다.
☞ 조반니 파울로 파니니, <로마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의 내부>
원근법은 대자연을 그릴 때나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실내에서도 여지없이 그 힘을 발휘합니다. 저 정확한 원근법과 디테일의 정확한 묘사는 마치 과학자가 그린 그림 같습니다. (수학자였다가 화가로 전업한 화가가 있었는데, 그 화가의 작품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납니다.) 원근법이 무엇인지, 교과서 속 이론을 거장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온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저를 밀어내지 않았다면 다른 그림 앞으로 갈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 小 피터르 브뤼헐, <겨울: 스케이트 타기>
마치 '숨은 그림 찾기'하는 것 같습니다. 스케이트 타는 사람, 넘어질 듯 휘청대는 사람, 얼음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 친구가 썰매 밀어주는 커플도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재치있게 담아낸 이 작품은 해설 그대로 '동화' 같습니다. 목판에 그렸단 점도 특이합니다. 브뤼헐리 그린 사계 중 겨울입니다. 브뤼헐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회화는 예술의 의미도 있지만 '기록'의 의미도 매우 컸다고 생각됩니다.
작가 작품명 모두 모르겠어요 T.
정물화가 테마인 방도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제일 그리기 싫은 게 정물화였는데, 생각이 아주 달라졌어요. 정물의 배치, 구도, 표현 등등 그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정물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운데 가재의 크기가 과장된 것, 눈치 채셨나요?
☞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 <헝클어진 머리를 한 렘브란트>
전시회 주인공이 렘브란트인데, 여지껏 한 마디 언급이 없었네요. 특별전 <렘브란트를 만나다>는 에칭 특별전으로 꾸며졌습니다. 동판에 조각칼 등을 사용해서 그린 다음에 부식시킨 후 찍어내는 기법인데요, 작품의 크기가 매우 작아요. 저 자화상은 제 손바닥만한 크기입니다. 아주 어릴 때 쓰던 스케치북 크기 정도인 작품도 있었지만, 대부분 제 손바닥 크기 수준이었어요. 아무래도 작품을 만드는데 공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선 하나하나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렘브란트가 작업하는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부시시한 머리의 렘브란트가 인상적이죠? 신화 속 여신도 똥배 불룩하게 그리더니, 자기 모습도 있는 그대로 그리나봅니다. 저는 해설의 '사실적'이란 설명보단 렘브란트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똥배를 가진 여신(요정?)이라니...ㅋㅋ
☞ <깃털이 달린 벨벳모자를 쓴 자화상>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렘브란트>
화가로 잘 나갈 때 돈을 펑펑 쓰던 렘브란트는 말년에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인도 먼저 죽고, 혼자 쓸쓸한 생활을 할 때 그린 자화상이 창가에서 소박하게 그림 그리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모자와 옷을 입은 자화상이 돈 많이 벌 때 그린 그림이구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서양미술거장전은 오랜만에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렘브란트, 루벤스, 부솅 등등 거장을 만나는 의미도 있었고, 회화의 역사를 알고 상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되었고... 제일 좋은 점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겁니다. 누구의 그림인가, 얼마나 인정받는 작품인가, 역사적인 의미는 어느 정도인가도 중요하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다는 경험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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