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대로 말하기의 어려움


얼마 전, 재미있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표로 나선 캐리 프리진에게 미국사회의 뜨거운 감자, 동성결혼에 대한 질문이 주어집니다.
[인터뷰:페레즈 힐턴, 심사위원]
"최근 버몬트주가 4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했는데 모든 주에서 이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Vermont recently became the fourth state to legalize same-sex marriage, do you think every state should follow suit: why or why not?)
대답은 단호합니다.
[인터뷰:캐리 프리진, 미스 캘리포니아]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공격할 의도는 없지만 이게 내가 배우고 자라온 방식입니다."
(In my country and in my family, I think that, I believe that marraige should be between a man and a woman no offence to anybody out there, but that's how I was raised and that's how I think it should be between a man and a woman Thank you.)
프리진의 소신있는 답변에 방청객도 환호와 야유가 엇갈립니다.문제는 이 질문을 한 심사위원이 공개적인 동성애자였다는 점. 미 언론들은 점수를 계속 앞서나가던 프리진이 이 답변으로 왕관을 넘겨주고 2위에 머물렀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인터뷰:캘리포니아 주민]
"세계의 여성을 대변하려면 좀 더 사려깊은 표현을 썼어야 합니다."
(she is trying to be a voice of women all around the world, I think she ought to have used a little better judgement.)
[인터뷰:캘리포니아 주민]
"적절한 답변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적 이유로 의견개진을 두려워 한다면 그게 끔찍한 일입니다."
(I think she did answer the question right, it was her opinion, if people are afraid to give their own opinion for political correctness then there might be a negative backlash, that is an awful thing.)
...<출처 : YTN 원문보기>


제가 미스 캘리포니아였다면, 동성결혼에 찬성 안한다는 본인 의견을 절대 솔직히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계의 평화사절단을 자처하는 미녀대회 수상자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소수’를 껴안는 답변을 해야 우승에 가까워진단 걸 알고 있으니까요. 분명 저 여성도 어떤 답변이 유리한지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 동성결혼에 대한 미스 캘리포니아의 의견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을 논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세요.)

미인 대회에서 나오는 질문과 답변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냐, 앞으로의 꿈은 뭐냐,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냐 등 대답도 뻔한 그런 것들. 소위 낯간지러운 ‘착한 척’이 물씬 풍기는 대화가 오고가는 것이 미인대회 무대입니다. 미스 캘리포니아도 그 연장선에 있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대답, 정확한 찬반은 피하면서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는 대답...이렇게만 하면 그녀는 원하는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질문에서 소신발언을 하는 바람에 2등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소신과 다르게 말한다고 누군가 다치거나,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 피해 없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누구나 소신보다는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대답을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소신을 밝히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는 사람 몇이 모인 자리에서도 때론 머뭇거리는데,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장소에서, 그것도 손해와 이익이 갈리는 소신 밝히기라면 오죽 어렵겠습니까. 이것이 미스 캘리포니아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가진 제가 그녀에게 박수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제가 못하는 것을 그녀는 했으니까요. (그녀가 멍청하거나, 1등을 자신한 자만에서 비롯된 실수가 아니길 바랍니다.)

미스 캘리포니아의 소신대로 말하기는 인상적이지만, 저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소신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갈등을 유발하거나, 원하는 것을 놓치는 이유가 되거나, 상대가 기대하는 대답이 아닐 경우 저는 또 움츠러들지도 모릅니다. 미운털 박혀가면서까지 소신을 밝히는 것이 일개 소시민인 저한테 과연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순간의 갈등은 여전합니다. 튀지 않고, 묻어갈 수 있는 조용한 생활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 소신을 밝히고 다소 불편한 상황을 감내할 것인가?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과 스스로 당당하려는 의지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그 승부는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미스 캘리포니아는 지금 저 대답을 후회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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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듣고 싶어요



출근할 때 버스를 타고 남부순환로를 따라 오는데요, 길 옆으로 벌써 개나리가 피었어요. 점심 시간에 은행 다녀오는 길엔 봉우리 진 목련도 보았구요. 불황에, 취업난에, 고용불안에, 전혀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이 시대에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남자친구에게 시詩를 들려달라고 우겼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노래 몇 곡을 술술 빼내는 재주를 가진 친구라서 시詩도 마찬가지로 쉽게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음음. 괜히 말했다 싶었는데, 남자친구가 외워서 나중에 들려주겠다 약속했습니다.

대학 때만해도 시를 종종 읽었는데, 직장 다니고부터는 시집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도 기억에 없습니다. 봄 맞이 기념으로 시집을 들춰봐야겠습니다.

남자친구에겐 연애시(?)로 유명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들려달라했지만, 오늘 꽃을 보니 꽃을 주제로 한 시가 뭐가 있나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사화
                    구재기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지나는 바람과 마주하여
나뭇잎 하나 흔들리고
 
네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내 가슴 온통 흔들리어
 
네 또한 흔들리리라는 착각에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것이다

외웠던 시였는데, 컨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많이 아시겠지만, 상사화는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고 서로 그리기만 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선운사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다는데 봄이 되면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일상에 붙잡혀 떠나지 못 했습니다.

옛날에 선운사에 찾아왔던 불자가 스님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그 무덤가에 핀 꽃이 바로 상사화라죠. 만날 수 없는 관계, 그리움에 애닳은 사랑. 슬프지만 아름다운 전설을 가졌기에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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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꼭 숨겨야 하나



몇년 만에 보는 친척 조카가 집에 놀러왔습니다. 부엌에서 이야기 나누는 어른들을 피해서 이 방 저 방을 어슬렁거리더니 어느 새 제 방에도 들어왔습니다. 좁디 좁은 방이라 어디 앉으라고 할 곳이 없어서 주저하고 있는데, 아뿔싸, 아무렇게나 놓아둔 생리대 봉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 녀석이 눈치 못 채게 치우려는 심산으로 엉금엉금 움직이고 있는데, 제 몸짓이 수상했던지 바로 녀석에게 들키고 말았죠. 중학생. 왕성한 호기심. 말 수 없지만 고집세 보이는 표정. 생리대를 집어 든 녀석에게 제가 엄하게(?) "있던 자리에 내려놔."라고 했습니다.

녀석은 신경도 안 쓰더군요. 요즘 애들이 다 이럽니까? 쯧쯧. 어른 말을 막 무시하고, 제 품에 있던 강아지에게 생리대를 던져서 물어 오게 하고, 주거니 받거니,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저보다 덩치가 커서 쥐어박을 엄두도 안 나고... 찢기는 생리대, 찢기는 내 돈. 생리대 은근히 비싸잖아요.

제 방이 좁았던지 녀석이 강아지를 데리고 거실로 나가려고 하더군요. 제가 생리대 놓고가,하고 다시한번 엄하게(?) 말했습니다. "왜요?" "생리대잖아. 그거 사람들 다 보게 갖고 있는거 아냐." "왜요?" "아, 왜긴 왜야, 남들이 보면 창피하잖아." "왜요? 왜 창피해요?" "그냥 창피해. 그니까 냅두고 나가." "여자들 다 하는게 뭐가 창피해요?"

그러게요, 왜 창피할까요? 저는 생리대가 왜 창피해서 거실로 못 들고 나가게 했을까요?

생리대는 꼭 숨겨야 하는 물건??

어릴 때 생리대를 책상에 꺼내놓았다고 선생님은 절 나무랐고, 엄마는 아빠나 남동생이 본다고 욕실에 못 두게 했습니다. 갑자기 생리를 시작한 친구가 생리대 하나 달라고 하면, 누가 볼 새라 테이블 밑으로 건네거나, 가방을 통째로 주어야 했습니다. 슈퍼에서 생리대를 사면 계산하는 아주머니는-아저씨도-당연한 듯이 검은 비닐봉지에 싸주셨죠. 난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누군가 검은 봉지를 들고 있으면 "너 생리대 샀어?"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대학 때 처음 만난 남자친구와 첫 공식 데이트 하던 날, 차마 "나 갑자기 생리를 시작했어."란 말을 못해서 불편함을 내색 못하고 끌려다니다시피 했습니다.

"생리해." "마법에 걸렸어." "그거 해." 가끔 "터졌어."까지. 왜 저는 이 당연한 말을 회사 동료에게, 선후배에게, 친구들에게, 상대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하지 못 했을까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는 생리를, 생리대를 완벽히 숨기지 못해 그토록 안달냈을까요?

생리대를 숨기면 여성과 남성의 소통이 막힐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박힌 습관 때문에 아직도 생리대를 숨겨야 한다는 강박은 있지만, 차츰 나아지고 있습니다. 남자친구(보자기)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보자기도 처음엔 창피해했지만, 제가 생리때만 되면 짜증내고 집에만 있으려고 하니깐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하나씩 얘기를 꺼내게 되었구요. 생리에 대한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하면서 생리에 대해 생리대에 대해서 관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남자들이 생리에 대해 얼마나 알지 궁금합니다. 여성이 생리대를 숨기면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단절을 낳지 않았나 의심해 보았습니다. 여성이 숨기니 남성도 모르고, 남성이 생리를 모르는 만큼 여성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닐까. 생리를 알아야, 여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리. 제 화장대 위에는 김연아 선수 얼굴이 박힌 생리대 봉투가 아직도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도 생리대를 숨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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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과 다리 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미국의 행복전도사



사무실 언니가 네이트온으로 슬쩍 넣어준 동영상입니다. 코 끝이 찡한 감동이 있네요. 눈물 참느라 얼굴 벌개져 있는데 팀장님이 마침 오셔서 "하품했어?" 물으셔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ㅎㅎ 

행복전도사 Nick Vujicic 씨



장애인이 온 몸으로 자신의 장애를 보여주고 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인데요, 큰 감동이 있습니다. 보고 확인해 보세요. 펌질이 안 되니 링크 걸어둡니다~

☞ 행복전도사 Nick Vujicic 씨의 명강의 들으러가기 (짧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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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상황에서 여성의 최고 무기는?


아침에 뉴스 검색을 하다가 치한을 만났을 때 여성의 핸드백이 무기가 될 수 있단 기사를 봤습니다. 홍보기사 같긴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네이버 메인에 올랐더라고요.

괴한 만났을때 여자의 최고 무기는 핸드백   
 
괴한을 만났을 때 유용한 무기는? 핸드백.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과 동승할 때는? 층수 버튼을 먼저 누르지 말 것. 강호순 연쇄살인을 계기로 여성들의 자기 보안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출처 : 매일경제 기사원문보기>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제가 스무 살때 겪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성추행, 제가 당한 적이 있었고 당시에 가방을 사용해서 패 주었죠.

신촌에 있는 유명한 술집이었는데, 맥주 마시면서 음악 듣는 곳으로 유명했어요. 한쪽 벽을 꽉 메운 LP판을 쉬지 않고 틀어대는 긴 머리의 주인 아저씨. 단순히 술 마시러 오는 곳보다는 음악을 즐기러 와서 맥주도 한잔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벌써 십년이 됐네요. 당시엔 자주 갔지만 그 일 이후론 신촌 근처도 가길 꺼려했기에 아직 그 곳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일이 있던 날도 여느 날처럼 맥주를 앞에 두고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나 친구나 술을 잘 못해서 병맥주 각 1병이면 음악에 맞춰 몸을 살짝 흔들 정도로 흥을 돋울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다 보니 돈도 없고, 많이 마시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맥주 한 병에 몇 시간씩 원하는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누리는 곳.

그 곳은 화장실이 홀 안에 있어서,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겠다, 남녀 각각 하나의 화장실이겠다, 줄이 길지 않더라도 테이블 사이까지 나와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화장실에 가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제가 맨 뒤였어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데 몇 발자국 건너에서 어떤 남자가 술에 취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면서 슬슬 제 쪽으로 걸어오더군요. 화장실 가나보다, 엄청 취했구만...하고 생각하는 둥 마는 둥 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제 뒤로 오더니 엉덩이를 만졌습니다. 양손으로. 스치거나 모르는 척 만진 것도 아니었죠. 한번을 '제대로' 만지더니 어딘가로 훌쩍 가버렸어요.

시간이 흘러서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하고 얘기해 보니, 대부분 저처럼 너무 놀라서 꿈쩍 못 했다고 하더군요. 전 그 사람이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댄 순간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헉' 소리도 낼 수 없었어요.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 순식간에 벙어리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복잡한 술집이고 다들 음악 듣느라 절 본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으로 그 자리에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친구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돌아갔습니다.

친구가 제 굳은 얼굴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묻는데 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화나고, 창피하고, 어찌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입이 움직이지 않더군요.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술집을 나갈 생각에 가방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괜히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출입문을 향해 나가고 있는데, 아뿔싸, 그 놈이 바로 출입문 근처에 앉아 있는 겁니다. 얼굴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가방으로 내려쳤죠. 한번 두번 계속 사정없이 내리쳤는데, 그 남자는 꿈쩍도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너무 취해서 자기가 맞는지조차 몰랐던 거죠. 내가 수치심을 느낀 만큼 그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그때부턴 본격적으로 울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그 남자를 가방으로 때리면서 소리내서 울었어요. 친구가 왜 이러냐고 소리치고, 주인아저씨 뛰어와서 말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이 그러다가 술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저를 따라 나온 친구가 저 남자가 너한테 무슨 짓 했냐고, 자기가 가만 안 두겠다고 욕하면서 날뛰는데 '범인'의 일행인 듯한 남자분이 저희를 쫓아 나오셔서, 왜 그런지 묻더군요. 저는 흥분해서 아무 말 못하고 분노에 찬 울음범벅이었는데, 짐작을 하셨는지 취한 친구 대신 사과하겠다며 백배 사과하셨습니다.

'최고의 무기 핸드백'이라 할지언정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은 씁쓸한 경험. 시간이 많이 흘러서, 문제 상황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핸드백은 최고의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무기는 바로 '정신 똑바로 차리기'라고 생각합니다. 울며불며 뛰쳐나오는 것보단 분명하게 알리고 사과를 받았다면 - 물론 완전 술이 취해서 정신 빠진 놈이었지만 - 어땠을까? 정도가 약한(?) 성추행에 그쳤으니 망정이지, 더 심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면 저처럼 흥분해서 때리는 행동은 오히려 나쁜 효과를 불러오리라 여겨집니다.

성추행이나 괴한을 만나는 일 따위 전혀 없으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조심할 수밖에요. 아무리 대책을 세운다한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사안의 경중을 떠나 상처가 남게 마련입니다. 여성도 남성도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할 일입니다. 저한테 가했던 놈도 그저 취해서 저지른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놈은 자신의 잘못을 모른 채 발 쭉 뻗고 자겠죠? 저는 아직도 저런 기사만 보면 부르르 화가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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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지독히 외로워서 글을 씁니다"



 
3년 전에 드라마 작가님 한 분을 알았는데, 누군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글을 쓰시나요? 그에 대한 답이 "외로워서" 였지요. 듣는 순간 그 말 그대로 제 가슴에 와서 콱 박혔습니다. 외.로.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 요동치는 마음을 들킬까봐 창 밖에 있는 우중충한 빌딩만 바라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얘기를 오늘 또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막 등단한 소설가가 그러셨답니다. "외로워서, 지독히 외로워서 글을 씁니다" 아. 3년 전 제 가슴을 때린 외로움을 다시 대면하다니. 제가 직접 들은 말은 아니지만, 가슴 절절이 느낌이 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습니다. 외로울 때, 나는 무얼 했는가?

'나는 외롭지 않아. 외로웠던 적이 없어.'하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외로워 본 적이 없다고 우긴다면 저의 '외로움'이 당신에겐 다른 이름으로 불린게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이 가지는 본성이라고, 감히 짐작합니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외로움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이에 비례한 직접 경험으로 외로움을 배워나갔는 지도 모릅니다. 크게 웃는 와중에도 외롭구나, 맛있는 걸 먹어도 외롭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있는 순간에도 외로울 수 있구나... 소통의 부재나 사회성의 부족을 들먹일 일이 아닙니다. 시작도 끝도 모르는 외로움은 항시 제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 업무에 집중할 때, 화장실 볼일에 힘 줄 때 등등 - 외로움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가 또 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잔잔한 바다에 떠다니는 스티로폼 같이 수면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외로움, 저의 외로움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외로운 때 저는 글 안 쓰고 무엇을 했을까요? 저도 글을 썼더라면 저 분들처럼은 못 되더라도 그 언저리쯤은 될 수 있었을텐데…

키보드에 손을 올려 놓은 채로 가만 생각해보니… 저는 외로울 때 가만히 있었습니다. 외로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임을 일찍 깨우쳤나 봅니다. 이렇게나 가만히 있던 걸 보면.

외로워서 할 수 밖에 없는 일. 듣기엔 멋있고 운명같은 묵직함도 느껴지지만, 본인에겐 분명 고통이 따랐을 겁니다. 외로움은 '참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외로움을 친구로 만들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고, 인내를 하더라도 살가운 친구가 되긴 힘든, 아주 요상한 놈입니다. 정체불명이죠.

외로울 때 영어 단어라도 외워볼까요? 영화를 한 편씩 볼 수도 있겠군요. 책도 있겠고요, 밥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일기를 쓴다던가, 애인을 못 살게 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외로울 땐 이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외로움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원동력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원동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이 깊고 무거운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면, 저의 그것은 얕고 가벼웠던 겁니다. 아하, 제가 훌륭한 무엇이 되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네요. 과연? 하하.  외로움에게 잘 해줘야겠습니다. 그래야 같이 으쌰으쌰해서 뭔가 해보지요.

지독한 외로움을 원동력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는 분을 다시 만나서 다소 감상에 젖었습니다. 존경하면서도 가슴 아릿한 것이 밀려와서 몇 글자 적어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외로움을 믿고 따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부터 움직여 볼 심산입니다. 외로움과 함께.


주먹입니다

외로움을 손에 들고 움직이는 주먹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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