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창녀’의 아들이 전하는 삶의 진리 ‘사랑해야 한다’


몸 파는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십여 명의 여성이 일제히 웨딩드레스를 차려 입고 온돌방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성매매와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전부 할 말 없다며 등을 돌려 버렸다. 그 싸늘함에 기죽은 내가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자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던 한 여성이 “이거 밖에 할 줄 없는데 우리가 가긴 어딜 가.”하고 무심한 목소리의 말을 던졌다. 초보티가 풀풀 나는 나를 배려해서 인터뷰에 응해 준 것이다. ‘창녀’인 자신을 찍어대는 카메라까지 포용해 준 그녀에게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고, 지금껏 남아있던 그 여운이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끌린 이유이다. ‘엉덩이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그 감동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나를 외면했던 하얀 웨딩드레스의 그녀들이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으로 살아나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내가 ‘창녀’로만 대했던 그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아들일 법한 모모가 읽기도 전에 걱정되기 시작했다. 창녀의 자식인 열 살 소년에게 어떤 핍박이 닥칠지, 거기다 아랍계이니 ‘호로자식’으로 끝날 수 있는 욕에 몇 가지가 더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걱정과 다르게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강한 애착으로 모모를 돌보는 로자 아줌마와 성인(聖人)을 닮은 하밀 할아버지가 있는 그곳이 어쩌면 '창녀'인 엄마의 품보다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경이 주는 영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얼굴 한 번 못 본 엄마를 떠올리면서 ‘좋은 포주가 되어 엄마를 돌봐주었을 것’이라 확신하거나, 늙고 뚱뚱하고 병든 로자 아줌마를 위해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 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고 계획하는 모모를 볼 때면 그 환경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었다. 자칫 비참하고 무거울 수 있는 부분에서 열 살만큼의 안목을 크게 펼쳐 놓았기 때문에 제목 <자기 앞의 생>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을 덜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앞의 생 프랑스판 표지

그림출처 : http://blog.naver.com/miejin27/13305195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 하밀 할아버지 뿐 아니라, 아프리카계 포주 은다 아메다, 과거 세네갈 출신 권투 챔피언이었으나 성전환 수술 후 창녀가 된 롤라 아줌마, 따뜻한 유태인 의사 카츠 선생님 등등 국적·나이·직업을 불문한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모모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고 그 실천은 로자 아줌마에게 향한다. 병원에 실려 가서 식물인간으로 연명하는 것보단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로자 아줌마를 위해 모모는 모두를 속이고 지하실로 들어간다. 아줌마가 자신의 죽음을 위해 마련해 놓은 그 곳에서 편히 죽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그녀가 숨을 거두어도 모모는 여전히 그녀 곁을 지킨다. 생전에 아줌마가 좋아했던 향수를 뿌려주고 바로 옆에서 잠들면서, 시체 썪는 냄새를 쫓아온 이웃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모모는 로자 아줌마 곁을 지킨다.

죽은 아줌마를 떠나보낸 후, 소설은 초반에 품었던 의문에 답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처음 이 질문을 한 사람도 모모였지만, 답을 찾은 사람도 모모 자신이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없으므로 항상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창녀’의 아들 모모가 보통인 우리에게 전하는 생의 진리이다.

기분이 묘했다. 온돌방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앉아 있는 기이한 광경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어안이 벙벙한 채로 마지막 장에서 손을 뗐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알고 있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를 ‘창녀’의 아들 입에서 듣고 나니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이상했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내가 아는 신과 모모의 주장은 비슷했다. 제일 위에 있는 신과 제일 아래에 있는 모모가 말한 ‘사랑’을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있는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했다. 신에게 했던 것처럼 모모에게도 똑같이 대답하겠다. 아멘.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이제 비로소 내가 마주했던 ‘창녀’들과 화해한 기분이 들었다. 모모로 인해서 그녀들도 나도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을 쓴 작가 ‘에밀 아자르’는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작가 ‘로맹 가리’가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주목을 끌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로맹 가리’가 자살한 이후 유서에서 밝혀졌다는 이 사실은 당대에도 큰 화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소설에 따라 붙는 흥밋거리이다. 별 짓 다하는 작가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다양한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모모의 횡설수설하는 말투에 귀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작가도 모모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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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익숙한 그녀들 - 가족소설 <마이 디어 걸>


지지고 볶고 떠들고 까불고 다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위로하고 결국 이해하게 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고 <마이 디어 걸>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표지의 그림을 똑 닮았을 세 자매 코린, 시빌, 조르제트가 아직도 프랑스 파리 근처의 작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을 듯 합니다.




표지의 작가 얼굴이 익숙합니다. 띠종이에서 설명하듯이 배우라는군요. '프랑스가 인정하는 대표적 연기파 배우'에 작가로써도 한 명성 한다니 그야말로 '엄친아'입니다. 제가 10대에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본 <비욘드 사일런스>의 주인공이라는데, 프랑스 배우가 독일 영화 주인공이라… 당시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세월이 흘러 알게되니 더욱 신기합니다.
소설내용도 작가를 많이 닮았습니다. 작가 또한 이태리 계 프랑스인이고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는군요. 역시 작가의 삶과 글은 많은 부분에서 맞닿아 있나봅니다.

10세 전후의 세 자매는 성격이 제각각입니다. 맏언니 코린은 감수성이 풍부해서 문학에 푹 빠지기도 하고, 엄마랑 며칠이라도 헤어질라 치면 한강을 만들정도로 눈물을 쏟습니다. 막내 조르제트는 엄마가 제지할 때까지 사탕을 먹어대는 귀여운 먹보입니다. 둘째가 시빌입니다. <마이 디어 걸>은 시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덩치큰 남자랑 싸우고 온 얼굴에 멍투성이로 집에 돌아오거나, 쓰레기인줄 알고 엄마 신발을 전부 내다버리는 사고뭉치가 시빌입니다. 시빌은 언니와 동생과 다르게 생겨서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책 표지의 세 명을 보면 혼자 금발 머리에 파란 눈동자를 한 시빌이 눈에 띌 겁니다. '그 사람' 흔히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세 자매의 엄마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부지런하게 집안을 쓸어대고 아이들 머리를 땋아주고 점심을 챙기는, 우리 엄마랑 비슷하단 생각될 정도의 보통 엄마입니다. 다만,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시빌의 아빠, 남편이 없을 뿐입니다. 남편이 없다고 성당에선 남들이 하는 예식에 참여 못하고...그래서 시빌은 화가 납니다. 시빌은 또 화가 납니다. 엄마가 남자친구를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기까지 한다네요. 아...이래저래 조용할 일 없는 가족입니다.
이 집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딱 하나입니다. '그 남자'를 거론 않는 것. 아이들은 짐작으로 '그 남자'가 아빠인 줄 알지만, 사진을 봤다는 걸 숨길 정도로 일체 아무 소리 안 합니다. 엄마가 싫어하니까...

방 하나를 나눠쓰던 아이들이 어느 새 자신의 집을 가질 정도로 성장합니다. 코린 언니와 동생 조르제트는 선생님이 되었고, 같이 살던 엄마의 남자친구도 집을 나갔습니다. 시빌은 성공한 작가로 TV에 출연하거나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 생활 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 남자'를 실제로 보게 됩니다. 아...당신이라면 30년이 넘도록 존재하지 않던 아빠를 처음 보는 그날,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시빌은 그렇게 '그 사람'을 만나고 난 후 엄마를 만납니다. 상황을 보고하면서 시빌은 차츰 엄마와 '그 사람'의 관계를 이해합니다.

완벽히 행복해 보이는 가족도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시빌네도 그렇습니다. 아빠가 없다는 건 누구에게나 보이는 명백한 사실이기에 본인의 상처도 클거라 문제시해버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시빌은 말 합니다. 그것은 딸인 자신보다는 부모님 즉, 사랑했던 연인의 문제였다고...

<마이 디어 걸>은 읽기 쉽고, 공감 팍팍 가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삶이 반영돼 있다더라...에 기대를 건다면 어느새 본인의 삶도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작가는 내 가족인듯한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인 주제를 잘 표현했습니다. 그들의 소소한 생활을 들여다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데, 읽는 내내 잔웃음이 꾹 다문 입에서 비져나오곤 하더군요.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린 점이 돋보입니다. 픽션의 주인공은 원래 '문제적 인간'이잖아요. <마이 디어 걸>의 주인공은 '보편타당한 문제적 인간'이랄까요?^^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건전한 소설입니다. ㅎㅎ 시빌은 싫어할 것 같군요. 

포근한 표지의 느낌대로 읽어 갈 수 있는 <마이 디어 걸>. 프랑스 여행을 간다면 시빌이 살던 아파트를 찾아내 볼 생각입니다.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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