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19 순대는 한번에 썰 수 없다 10
  2. 2009.02.10 중년 아저씨에게 안길 뻔한 15
  3. 2009.02.06 주먹의 취향은? 2

순대는 한번에 썰 수 없다


안녕하지 못한 하루가 저녁 7시를 넘겼습니다. 온다는 비가 신통치 않게 내리더니 지금은 그쳤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배는 부른데 머리 속은 텅 비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사무실에 혼자 있을 시간이 생겼습니다. 

학업부진아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업무는 하루를 넘기기에 급급하고, 생활은 진창 속에 빠져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힘에 부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가. 돌아보고 돌아봐도 황사 낀 뿌연 하늘마냥 분명한 것 없이 답답합니다.

내용과 아무 상관 없으나 예쁘죠?

아무래도 며칠 전에 받은 전화 한 통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예전 직장의 상사가 갑자기 전화를 주셨습니다. "야이 자식아, 넌 안부 전화 한 통을 안 하냐!"는 원망을 시작으로 제 현재 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더니 "왜 그렇게 됐어."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왜.

"왜 그렇게 됐어."의 의미란, 꿈 이루겠다고 큰 소리치고 나간 녀석이 어찌하여 본인의 장담과는 다른 장소에 앉아 있냐는 겁니다. 왜긴 왜겠어요, 뜻 대로 안 된거죠. 세상에 널린 뻔한 스토리 아니겠습니까, 노력했으나 이루지 못 했다는, 듣기도 말하기도 지겨운 그것.

2008년 겨울에 친구의 떡볶이 장사를 도와 주면서 생전 처음 순대를 썰어 봤는데, 그게 참 안 썰리더라고요. 순대껍질이 얇고 미끌거려서 요령이 없으면 썰 수가 없습니다. 친구는 척척인데… 딱 한번 썰어보고 다시 못 썰었어요. 손님은 밀려드는데, 초보자인 제가 연습삼아 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친구가 장사를 접었습니다. 딱 한번은 셈에 들지 않는다,는 외국 속담도 있다던데, 저는 한번의 경험으로 '나는 순대를 못 써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낸거죠. 두고두고 아쉬운 순대 썰기입니다.

옛 직장 상사에게 성공했다고도 실패했다고도 대답하지 못한 건 순대 썰기와 같은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난 딱 한번 도전했을 뿐인데. 그게 비록 1년이 걸린 일이긴 했지만, 제 인생에서 딱 한번의 도전이었죠. 변명 같지만 제 마음 속에는 분명 그렇게 남았습니다. 한번은 셈에 들지 않으니 두 번에서 이루지 못하면 그때 '실패'란 단어를 쓰겠노라. 변명같네요.

여전히 비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가뭄 해갈은 언제 될런지.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사실, 저의 노력은 끝을 보인 듯 합니다.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면 "왜 그렇게 됐어."에 분명한 답을 했겠죠. 서른에도 전 여전히 방황하고 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끝날 줄을 모르네요.

전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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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아저씨에게 안길 뻔한

무릎 튀어나오고 빛은 바랠 대로 바랜 추리닝 바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 집안에서 입는, 엄마 표현을 빌자면 '걸레짝'같은 옷에 외투만 걸치고 대문을 나와 몇 발짝 걸어 나가자마자 골목 초입에 들어오던 낯선 중년 아저씨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아저씨는 두 손을 흔들면서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오더니 내가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내 코앞에 섰다.
 
아뿔싸, 나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앞을 가로 막은 아저씨의 옆구리로 가볍게 빠져나왔다. 아저씨는 나보다 훨씬 컸고 난 아주 작았으니 민첩함이 없어도 가능했다. 이젠 아저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는데, 그때 마침 저 뒤에서 손에 짐을 바리바리 든 아주머니가 뒤뚱뒤뚱 빠른 걸음으로 오시면서 소리 질렀다.

"거기 중현이 아냐! 여자잖아!"

아. 상황 파악은 끝났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나와 같은 골목 어딘가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오셨는데, 나를 당신들 조카로 착각하신 거였다. 여기까진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조카가 마중 나온 지 알고 예뻐서 꼭 안아주려던 아저씨는 참 따뜻한 분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중현'은 남자이름이 아니잖은가!! 내가 왜!! 날 왜 남자로 오해하냔 말이다! 아저씨가 달려와서 안으려던 상황을 보아 나이가 많은 조카는 아닐 성싶다. 그렇다면 나는 십대남성으로 짐작되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 아... 여드름 투성이에 수염 듬성듬성 난 십대남성과 내가 어디가 닮은 걸까?

사건은 1분 남짓 된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지만, 난 그 충격으로 천지가 개벽하는 혼돈과 '나이 값 못하는 외모'로 인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평생을 두고 나이 값하는 외모를 가져본 적 없음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며 방바닥을 쥐어뜯었다. 거기다 이젠 '남자같다'는 사실이 더해졌다. 괴로워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혹자는 '동안'을 강조하며 위로하려 했지만, '동안'은 백옥 같은 피부에 쌍꺼풀 진한 큰 눈을 가진, 통상적으로 '예쁜' 사람에게나 칭찬이지 나처럼 '보통'의 범주에 쑤셔 넣어지는 사람에겐 그저 '어려 보여서 때론 무시당할 수 있는' 핸디캡일 뿐이다.

화장을 하거나 정장을 입을 자리가 되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어려 보인다는 사실을 실감할 땐 정말 너무 싫다.

뒤 따라 오시던 아주머니가 "저 사람이 조카로 착각해서 그래. 미안해요."하고 친절히 설명해 주셨는데, 난 충격에 빠져서 "괜찮아요." 한 마디를 해드리지 못 했다. 머쓱해하셨던 아저씨와 사과하신 아주머니에게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혹 골목에서 또 마주친다면 날 알아보실까?

음...남자같나?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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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의 취향은?

티스토리 베스트를 훑다가 취향분석이란 제목을 보고 "역전의 용사"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클릭만 몇번 하면 되기에 별 생각없이 까딱까딱 마우스 질을 하고 있는데, 제 취향에 대한 상세설명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참신하고 변덕스러운, 주관의 영역

어제는 내일 같지 않을 것이고, 변덕 외에는 아무 것도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 퍼시 B. 셀리

 

참신한, 희귀한, 새롭고 독특한 것들을 추구하는 영역입니다. 좋아하는 것에 특별한 기준은 없으며 오직 나 자신의 느낌과 주관, 변덕이 중요한 곳입니다.

 

개성도 줏대도 없는 따라쟁이들, 지적인 척 잘난 척하는 속물들, 너도나도 사보는 베스트셀러, 아줌마들이 떠들어 대는 뻔하고 지루한 연속극들은 추방될 것입니다.

 

이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건방지거나, 못 생겼거나, 심하게 시대착오적인 것들에 비교적 너그러운 편 
     
  • 무엇에든 쉽게 질리는 경향. 이 때문에 끊임없이 더 새롭고 참신하고 희귀한 것을 찾는 편
     
  • 워낙 취향이 주관적이라 좋아하는 것에 기준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음. 참신하고 희귀한 것이 좋다지만 너무 특이한 그림이나 소설은 싫어할지도 모르고, 지겹게 듣는 대중가요 중에도 뜻밖에 좋아하는 곡이 있을 수도 있음
     
  • 대중이 찾지 않는, 음지에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음. 우수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아무도 안본 훌륭한 독립 영화 등 숨은 진주를 찾아내 사람들에게 알리는 문화 메신저의 역할을 하기도 함.

맨 위에 파란줄로 된 것이 타이틀인데 저의 취향은 <참신하고 변덕스러운 주관의 영역>입니다. 타이틀만 보고는 도대체 뭔 소린지 짐작이 안 됐는데 상세 설명을 보다 헉! 했습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도 별로 믿지 않는 편 맞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책 운운해도 직접 확인해 보고 사는 편이죠. 아무리 별로라 그래도 읽어봐야 직성이 풀리기도 하구요.

'건방지거나 못 생겼거나 심대착오적인 것에 너그러운 편'은 제가 항상 견지하는 자세입니다. 몇년 전에 "싸가지 없을 권리"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고개를 한참 끄덕였죠. 이럴 수도 있구나 동감했습니다. 사람마다 '상식'이 다르다는 사실과,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것 등 제가 노력하는 삶과 닮아 있는 해석을 보고 놀랐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기준이 확실치 않은 것도 저의 성향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 "너는 일관되지가 않아."라는 말을 저에게 했습니다. 어쩌라고... 하하. 그 친구에게 이걸 보여줘야겠네요.

"변덕외에는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는 말이 특히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20대 후반에 와서 저 스스로 참 변덕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 이렇게 확정지어버리다니...

저를 아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놀랄 정도로 공감이 가는 설명이라 블로그에 올려 봅니다. 재미삼아 할 만한 테스트인데, 제가 직접 링크 시키는 것보다 역전의 용사님 블로그에 가서 찾아 가도록 하는게 도리(?)같아서 해당 블로그를 링크합니다.

기형도 시집을 좋아하는 것도 정확히 맞췄습니다. 대학 때 끼고 다니던 시집입니다. 사진 올릴 것이 없으니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나 올려보죠.

어이쿠 이미지가 작네요T.T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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