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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0 중년 아저씨에게 안길 뻔한 (15)

중년 아저씨에게 안길 뻔한

무릎 튀어나오고 빛은 바랠 대로 바랜 추리닝 바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 집안에서 입는, 엄마 표현을 빌자면 '걸레짝'같은 옷에 외투만 걸치고 대문을 나와 몇 발짝 걸어 나가자마자 골목 초입에 들어오던 낯선 중년 아저씨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아저씨는 두 손을 흔들면서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오더니 내가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내 코앞에 섰다.
 
아뿔싸, 나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앞을 가로 막은 아저씨의 옆구리로 가볍게 빠져나왔다. 아저씨는 나보다 훨씬 컸고 난 아주 작았으니 민첩함이 없어도 가능했다. 이젠 아저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는데, 그때 마침 저 뒤에서 손에 짐을 바리바리 든 아주머니가 뒤뚱뒤뚱 빠른 걸음으로 오시면서 소리 질렀다.

"거기 중현이 아냐! 여자잖아!"

아. 상황 파악은 끝났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나와 같은 골목 어딘가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오셨는데, 나를 당신들 조카로 착각하신 거였다. 여기까진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조카가 마중 나온 지 알고 예뻐서 꼭 안아주려던 아저씨는 참 따뜻한 분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중현'은 남자이름이 아니잖은가!! 내가 왜!! 날 왜 남자로 오해하냔 말이다! 아저씨가 달려와서 안으려던 상황을 보아 나이가 많은 조카는 아닐 성싶다. 그렇다면 나는 십대남성으로 짐작되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 아... 여드름 투성이에 수염 듬성듬성 난 십대남성과 내가 어디가 닮은 걸까?

사건은 1분 남짓 된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지만, 난 그 충격으로 천지가 개벽하는 혼돈과 '나이 값 못하는 외모'로 인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평생을 두고 나이 값하는 외모를 가져본 적 없음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며 방바닥을 쥐어뜯었다. 거기다 이젠 '남자같다'는 사실이 더해졌다. 괴로워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혹자는 '동안'을 강조하며 위로하려 했지만, '동안'은 백옥 같은 피부에 쌍꺼풀 진한 큰 눈을 가진, 통상적으로 '예쁜' 사람에게나 칭찬이지 나처럼 '보통'의 범주에 쑤셔 넣어지는 사람에겐 그저 '어려 보여서 때론 무시당할 수 있는' 핸디캡일 뿐이다.

화장을 하거나 정장을 입을 자리가 되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어려 보인다는 사실을 실감할 땐 정말 너무 싫다.

뒤 따라 오시던 아주머니가 "저 사람이 조카로 착각해서 그래. 미안해요."하고 친절히 설명해 주셨는데, 난 충격에 빠져서 "괜찮아요." 한 마디를 해드리지 못 했다. 머쓱해하셨던 아저씨와 사과하신 아주머니에게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혹 골목에서 또 마주친다면 날 알아보실까?

음...남자같나?

Posted by 편지봉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