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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9 숭고한 종소리 - 워낭소리 old partner (5)

숭고한 종소리 - 워낭소리 old partner




1. old partner - 노동으로 엮인 관계
중노동의 세월. 일한만큼만 먹을 수 있던 과거부터 그들은 함께였다. 할아버지가 한발 내딛으면 소도 한발 내딛었다. 할아버지가 밥 한 그릇이면 소도 죽 한 사발이었다.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인간의 100년 보다 긴 소의 40년 인생과 중노동으로 점철된 노인의 고된 삶을 나는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영화관에 앉아 감상했다. 수십년 중 단 일초도 게으를 수 없었던, 그들이 온 몸으로 겪어낸 노동에 깊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보면 볼수록 할아버지와 소가 당하는 육체의 고통이 절절히 느껴졌다. 자꾸 눈물이 나온다. 아파서도 아니고 불쌍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저들의 반의 반만큼도 안 되는 일을 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창피했다.




2. 한 컷마다 살아 있는 장인정신
다큐라고 해서 사실, 카메라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TV를 장악한 흔들거리는 6m 카메라가 심히 못마땅한 처지라 내 돈을 몇 천원씩 주고 보는 큰 스크린에서까지 그런 걸 보고 싶진 않았다.
3년을 찍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숫자 3이지, 하루로 셈하면 그 단위가 만만찮다. 깊은 산골의 농촌 풍경이 살아 있었고, 계절의 변화가 컷 마다 느껴졌다. 할아버지와 소의 투샷, 할아버지 얼굴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은 물론  청개구리, 잠자리 인서트까지 한컷 한컷마다 장인정신이 살아있었다. 3년간 몇 개의 테잎이 촬영되었는지, 오디오가 잘못되어 아까운 장면을 버린 적은 없는지, 3년간 감독은 어떻게 돈 벌어 생활을 해나갔을지 소소한 촬영과정이 전부 궁금했다. 편집하면서 아까운 장면을 버려야 할 때 얼마나 속이 쓰린지 적게나마 경험이 있기에 감독이 편집하면서 들였을 공이 가히 짐작된다.
잘 만든 다큐는 참 재미있었다. 다큐가 '재미있다.'




3. 워낭은 죽지 않았다 - 다큐의 음악은 '워낭소리'
소가 조용히 눈 감던 날, 숨이 떨어지기 직전에 할아버지는 본인 손으로 코푸레와 워낭을 떼 냈다. 할아버지는 머리가 아파서 누워 있다가도 소의 워낭소리만 들리면 움찔하곤 했는데… 소의 목 밑에서 풀려난 종-워낭은 이제 할아버지의 낡은 집 처마끝에 매달렸단다. 소가 움직이는 듯 바람이 불 때면 워낭소리는 땡, 땡, 할아버지 곁을 지킨다.

다큐를 완성하는 음악은 다름아닌 워낭소리였다. 매 걸음이 인생의 마지막 걸음처럼 무거워 보였던 소의 움직임은 워낭소리가 있었기에 생명력이 느껴졌다. 소가 지치면 워낭소리도 지쳤고, 소가 꾸준히 걸으면 워낭소리도 힘이 났다. 소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워낭, 워낭소리. 워낭소리는 소의 생명이자, 기운이었고, 할아버지와 소가 나누는 교감 그 자체였고, 다큐를 완성하는 음악이었다. 아름다운 화면과 함께 소리로 기억될 다큐이다.

4. 내래이션은 할머니의 잔소리
다큐를 이끄는 해설은 할머니의 잔소리였다. 할머니는 농약치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저 여자는 농약 치는 남편 만나서 편히 살고, 나는 소한테 해 갈까봐 농약 절대 안 치는 남편 만나서 고생한다."고 부지런히 '설명'한다. "라디오도 고물, 할아버지도 고물" 이라고 껄껄 웃기도 하고, "열 여섯에 시집와 할아버지 만나서 이꺼정 일만 하고 고생한다."고 신세한탄도 늘어 놓는다. "팔아! 소 팔아!"하고 할아버지를 닦달하다가도 소가 안쓰럽고, 아픈 할아버지가 걱정이다. 어떤 내레이션이 할머니 잔소리만 했을까. 다큐가 웰메이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5. 잘 가라, 소야. 참말로 고맙다.
다큐의 시작은 소의 죽음을 알린다. 소를 위해 불공을 드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이 애쓰지 않아도 소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소가 그 많은 땔감을 해 놓은 것도 그래서가 아니겠는가. 소의 죽음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 이유는 소의 그런 마음을 너무 생생히 느꼈기 때문이다. 소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다리였고, 함께 일하는 동료였고, 같이 사는 가족이었고, 작은 움직임에도 마음이 쓰이는 친구였다. 할아버지에게 소 또한 그런 존재였으리라. 할아버지 할머니 소가 전하는 관계의 울림이 눈물이 되어 콸콸 쏟아졌다. 나의 인생에도 저런 파트너가 있어주길…



6.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
도시와 시골의 대비만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다른 나라 이야기 같았다. 내가 앉아 있는 영화관과 봉화 산골마을의 거리, 딱 그 거리만큼의 괴리감. 그러나 내가 '동화같은' 이라든가 '정겨운 시골 풍경' 따위의 단어를 쓸 수 없는 이유는 노인의 얼굴에 깊게 파인 세월과 노동의 흔적 때문이다. 그런 세월을 겪어낸 이에게 몽롱하고 불분명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난 시골생활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정겨웠던 적도 없다. 그들의 현실에 열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나도 내 현실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몸 건강하시길.

※ 모든 사진의 출처는 <워낭소리> 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warnangsori

Posted by 편지봉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