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듣고 싶어요



출근할 때 버스를 타고 남부순환로를 따라 오는데요, 길 옆으로 벌써 개나리가 피었어요. 점심 시간에 은행 다녀오는 길엔 봉우리 진 목련도 보았구요. 불황에, 취업난에, 고용불안에, 전혀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이 시대에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남자친구에게 시詩를 들려달라고 우겼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노래 몇 곡을 술술 빼내는 재주를 가진 친구라서 시詩도 마찬가지로 쉽게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음음. 괜히 말했다 싶었는데, 남자친구가 외워서 나중에 들려주겠다 약속했습니다.

대학 때만해도 시를 종종 읽었는데, 직장 다니고부터는 시집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도 기억에 없습니다. 봄 맞이 기념으로 시집을 들춰봐야겠습니다.

남자친구에겐 연애시(?)로 유명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들려달라했지만, 오늘 꽃을 보니 꽃을 주제로 한 시가 뭐가 있나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사화
                    구재기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지나는 바람과 마주하여
나뭇잎 하나 흔들리고
 
네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내 가슴 온통 흔들리어
 
네 또한 흔들리리라는 착각에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것이다

외웠던 시였는데, 컨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많이 아시겠지만, 상사화는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고 서로 그리기만 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선운사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다는데 봄이 되면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일상에 붙잡혀 떠나지 못 했습니다.

옛날에 선운사에 찾아왔던 불자가 스님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그 무덤가에 핀 꽃이 바로 상사화라죠. 만날 수 없는 관계, 그리움에 애닳은 사랑. 슬프지만 아름다운 전설을 가졌기에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었나봅니다.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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