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의 발자취 -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



서양미술거장전

서양미술거장전 초대권




보자기(남자친구)가 구해 온 <서양미술거장전: 렘브란트를 만나다> 티켓입니다. 일년쯤 전인가, 시립미술관에서 고흐전 할 때 제가 보고싶다고 하니까 자기가 이벤트 응모했으니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다리다가 결국 전시회를 놓쳐버린 전과가 있기에 이번에는 티켓을 냉큼 구해오더군요. 저야 고맙죠.

서양미술거장전

예술의전당 전면에 걸렸습니다

서양미술거장전

티켓박스도 거장전의 그림입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으로 북적북적. 엄마 아빠 손 잡고 나온 아이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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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입구 앞 로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서양미술거장전은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 스페인 등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 50인의 그림을 전시했습니다. 루벤스, 반다이크, 브뤼헐, 푸생, 부셰 그리고 렘브란트까지 익숙한 이름의 화가들이 눈에 띄는데요, 저 같은 문외한이 들어본 정도라면 무척 유명하다는 뜻 아닐까요? 전시회 이름 그대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부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당연하겠죠?^^) 그 분위기를 보여드릴 순 없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래 기다린 점을 제외하곤 괜찮았습니다. 전시장은 파스텔톤 벽의 아늑한 분위기로 차분한 조명과 함께 그림에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으로 향한 조명이 눈에 거슬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제가 키가 작아서 그런건지... 크기가 큰 그림을 정면에서 볼라치면 조명이 그림의 윗부분을 환하게 비쳐서 눈이 부시더라구요. 그래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봐야 했어요. 음... 정말 제 키 때문인지... 조명이 그림을 보는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단 사실을 처음 느꼈습니다.

전시실은 9개의 방으로 각 방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테마를 설명한 문구가 굉장히 멋있는데, 기억나는 게 없네요. 방학숙제 하는 어린이와 십대가 열심히 적고 있던데, 저도 따라 적을 걸 그랬나봅니다.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이 나와 있으니, 읽어보세요.

『서양미술거장展 : 렘브란트를 만나다』 바로가기

일요일은 그림 설명이 없어서, sbs 박찬민 아나운서가 해설하는 오디오를 들으며 전시실을 돌았습니다. 그림 설명이 어렵지 않게 귀에 쏙쏙 잘 들어옵니다. 해설 덕분에 그림 하나하나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것 같습니다. 아무 설명없이 봤으면 그냥 슥 지나쳤을 것을, 해설 덕분에 전시와 그림의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되어, 시험에 100점 맞은 것 만큼 뿌듯한 공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행사장에서 판매되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은 사실을 감안해 주세요.

서양미술거장전

부셰,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에로틱이 바로 느껴지지 않나요? 남성의 탄탄한 근육도 눈에 확 띄지만, 여성의 당당한 기세가 느껴집니다. 벌을 받느라 옴팔레의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 옴팔레가 그 남성다움에 반해 먼저 유혹했다는 오디오 설명에 키득거렸습니다. 이런 명작 앞에서 키득거릴수 있다니, 웃겨서 혼났어요.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과일 파는 소녀>
과일 파는 소녀의 얼굴에 머금은 미소에서 교태가 느껴지나요? 오디오 해설에 따르면 "교태가 느껴지는 미소는 소녀가 몸 파는 여인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동감할 수 없습니다. 저 미소가 교태라니. 물론 "당시에는..."의 조건이 붙었기에 반대할 여지는 없지만, 소녀가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무엇일까,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아무튼 참 예쁜 소녀입니다.


☞ 조반니 파울로 파니니, <로마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의 내부>
원근법은 대자연을 그릴 때나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실내에서도 여지없이 그 힘을 발휘합니다. 저 정확한 원근법과 디테일의 정확한 묘사는 마치 과학자가 그린 그림 같습니다. (수학자였다가 화가로 전업한 화가가 있었는데, 그 화가의 작품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납니다.) 원근법이 무엇인지, 교과서 속 이론을 거장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온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저를 밀어내지 않았다면 다른 그림 앞으로 갈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 小 피터르 브뤼헐, <겨울: 스케이트 타기>
마치 '숨은 그림 찾기'하는 것 같습니다. 스케이트 타는 사람, 넘어질 듯 휘청대는 사람, 얼음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 친구가 썰매 밀어주는 커플도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재치있게 담아낸 이 작품은 해설 그대로 '동화' 같습니다. 목판에 그렸단 점도 특이합니다. 브뤼헐리 그린 사계 중 겨울입니다. 브뤼헐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회화는 예술의 의미도 있지만 '기록'의 의미도 매우 컸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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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작품명 모두 모르겠어요 T.


정물화가 테마인 방도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제일 그리기 싫은 게 정물화였는데, 생각이 아주 달라졌어요. 정물의 배치, 구도, 표현 등등 그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정물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운데 가재의 크기가 과장된 것, 눈치 채셨나요?

☞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 <헝클어진 머리를 한 렘브란트>
전시회 주인공이 렘브란트인데, 여지껏 한 마디 언급이 없었네요. 특별전 <렘브란트를 만나다>는 에칭 특별전으로 꾸며졌습니다. 동판에 조각칼 등을 사용해서 그린 다음에 부식시킨 후 찍어내는 기법인데요, 작품의 크기가 매우 작아요. 저 자화상은 제 손바닥만한 크기입니다. 아주 어릴 때 쓰던 스케치북 크기 정도인 작품도 있었지만, 대부분 제 손바닥 크기 수준이었어요. 아무래도 작품을 만드는데 공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선 하나하나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렘브란트가 작업하는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부시시한 머리의 렘브란트가 인상적이죠? 신화 속 여신도 똥배 불룩하게 그리더니, 자기 모습도 있는 그대로 그리나봅니다. 저는 해설의 '사실적'이란 설명보단 렘브란트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똥배를 가진 여신(요정?)이라니...ㅋㅋ



☞ <깃털이 달린 벨벳모자를 쓴 자화상>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렘브란트>
화가로 잘 나갈 때 돈을 펑펑 쓰던 렘브란트는 말년에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인도 먼저 죽고, 혼자 쓸쓸한 생활을 할 때 그린 자화상이 창가에서 소박하게 그림 그리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모자와 옷을 입은 자화상이 돈 많이 벌 때 그린 그림이구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서양미술거장전은 오랜만에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렘브란트, 루벤스, 부솅 등등 거장을 만나는 의미도 있었고, 회화의 역사를 알고 상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되었고... 제일 좋은 점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겁니다. 누구의 그림인가, 얼마나 인정받는 작품인가, 역사적인 의미는 어느 정도인가도 중요하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다는 경험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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