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서른이면 절망이야"


2009년을 며칠 앞두고 선배가 메신저로 말을 걸더니 새해에 몇 살이냐고 묻습니다. 저는 별 생각없이 '30, 서른, 써티, 이립'하고 장난처럼 답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선배의 대답. "여자 나이 서른이면 절망이야." 하, 분명히 농담으로 던진 말일텐데, 나도 농담으로 받아? 아니지, 여성비하에 나이차별을 대놓고 했으니 농담이라도 봐 줄 순 없지, 정색을 하고 화 내? - 약 10초간 큰 혼란 끝에 한 말은 "아, 그런가요?"입니다.

2009년 1월 1일을 시작하는 0시에 종이 땡 치고, 공식적인 서른이 되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절망스럽나?'

힘내라 서른

서른의 초상?!



결혼을 종용하는 부모님과 반토막 난 펀드, 포기한 꿈의 잔여물가 그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력, 늘어난 기미와 주근깨, 주름, 늘어난 뱃살 특히 아랫배, 무한도전 멤버들보다 더 저질 체력, 나도 모른새 고착되어버린 아집… 이 정도면 '절망'이란 단어에 버럭할 일은 아니군요.


힘내라 서른

보자기와 주먹

결혼 얘기 꺼내는 부모님을 입 막음 할 수 있는 재주, 언제나 내 말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따듯한 애인, 빌리든 꾸든 약간의 현금 동원력, 갖은 직업이 가져다 준 다양한 경험, 어느새 구축된 말발, 어느 누구하고도 대화할 수 있고 하고 싶다는 열린 마음, 20대 초반이라고 사기칠 수 있는 얼굴, 서로 신뢰하는 친구들, 아직은 꿈 꿀 수 있을거라는 희망, 자리 잡아가는 나만의 취향과 안목,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포용력… 하하, 너무 억지인가요? 내가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들.

살펴본 결과, '절망'은 아니라고 결론 지어 봅니다. 스물 아홉이었던 어제와 서른이 된 오늘이 비슷한 일상이듯 나에게 있는 것들도 스물 다섯 혹은 그 아래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20대를 지날 땐 내가 갖고 있는 지조차 몰랐다고 할까요, 스스로 의식하고 그 근원을 캐내려 애써 생각하는 태도가 서른에 달라진 점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10단위의 나이가 의미있는 이유는 스스로 돌아보고 결산하는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선배의 말에서 '절망'에 방점을 찍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자'에 대한 생각은 좀 더 해봐야겠습니다. 스스로 여성임을 깨달은 지 얼마 안되거든요. 20년이 넘도록 자각 못한 사실을 알고 나선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그만큼 '여성'에 대한 고민은 독자적으로 풀고 싶습니다. 음...고민은 '절망'에서 연유했으나 결론은 '서른'에서 났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서른을 살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큰 기대도 섣부른 실망도 없습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몫입니다. 마흔이 되는 순간, "서른은 살아볼만 했습니다. 마흔도 기대되네요."하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면 좋겠네요. 여러분도 여러분 나이 만큼 행복하시길.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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