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는 한번에 썰 수 없다


안녕하지 못한 하루가 저녁 7시를 넘겼습니다. 온다는 비가 신통치 않게 내리더니 지금은 그쳤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배는 부른데 머리 속은 텅 비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사무실에 혼자 있을 시간이 생겼습니다. 

학업부진아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업무는 하루를 넘기기에 급급하고, 생활은 진창 속에 빠져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힘에 부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가. 돌아보고 돌아봐도 황사 낀 뿌연 하늘마냥 분명한 것 없이 답답합니다.

내용과 아무 상관 없으나 예쁘죠?

아무래도 며칠 전에 받은 전화 한 통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예전 직장의 상사가 갑자기 전화를 주셨습니다. "야이 자식아, 넌 안부 전화 한 통을 안 하냐!"는 원망을 시작으로 제 현재 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더니 "왜 그렇게 됐어."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왜.

"왜 그렇게 됐어."의 의미란, 꿈 이루겠다고 큰 소리치고 나간 녀석이 어찌하여 본인의 장담과는 다른 장소에 앉아 있냐는 겁니다. 왜긴 왜겠어요, 뜻 대로 안 된거죠. 세상에 널린 뻔한 스토리 아니겠습니까, 노력했으나 이루지 못 했다는, 듣기도 말하기도 지겨운 그것.

2008년 겨울에 친구의 떡볶이 장사를 도와 주면서 생전 처음 순대를 썰어 봤는데, 그게 참 안 썰리더라고요. 순대껍질이 얇고 미끌거려서 요령이 없으면 썰 수가 없습니다. 친구는 척척인데… 딱 한번 썰어보고 다시 못 썰었어요. 손님은 밀려드는데, 초보자인 제가 연습삼아 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친구가 장사를 접었습니다. 딱 한번은 셈에 들지 않는다,는 외국 속담도 있다던데, 저는 한번의 경험으로 '나는 순대를 못 써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낸거죠. 두고두고 아쉬운 순대 썰기입니다.

옛 직장 상사에게 성공했다고도 실패했다고도 대답하지 못한 건 순대 썰기와 같은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난 딱 한번 도전했을 뿐인데. 그게 비록 1년이 걸린 일이긴 했지만, 제 인생에서 딱 한번의 도전이었죠. 변명 같지만 제 마음 속에는 분명 그렇게 남았습니다. 한번은 셈에 들지 않으니 두 번에서 이루지 못하면 그때 '실패'란 단어를 쓰겠노라. 변명같네요.

여전히 비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가뭄 해갈은 언제 될런지.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사실, 저의 노력은 끝을 보인 듯 합니다.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면 "왜 그렇게 됐어."에 분명한 답을 했겠죠. 서른에도 전 여전히 방황하고 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끝날 줄을 모르네요.

전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Posted by 편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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